“사람들은 그저 저희가 괴짜들이라 이상한 광고를 만드는 줄 알아요. 그래서 제일기획이란 큰 회사의 답답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고 생각하죠.
사실 그건 오해예요. 오히려 저흰 ‘우리가 제일기획를 거친 별종’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봐요. 거기서 진짜 잘 배웠으니까요.
오늘의 커리어 포인트
혼종들만이 만들 수 있는 에너지
3천짜리는 5천처럼 만들어
광고에 세계관을 접목하다
광고주와 관계 설정
오직 커리업에서, 오늘의 뷰 포인트
남&송 연애 다이어리
제일기획 포트폴리오
빙그레우스 세계관 등장인물
커리어의 귀인, 김연정
세상은 원래 좀 삐뚤게 봐야 해, 그래야 ‘좋’같은 광고가 나온다니까?
별종, 이단아, 또라이, 오타쿠, 반골, 괴짜.
여기 범상치 않은 수식어를 모조리 몰고 다니는 광고 회사가 있습니다. ‘좋대로 만든다’는 저돌적인 포부를 담아 붙인 회사의 이름은 ‘스튜디오 좋’. 빙그레왕국의 관종 왕자 ‘빙그레우스’, 인간의 간 대신을 소주를 마시는 천년구미호 ‘새로구미’, 만년 조연 ‘미원’, 라면계의 꼰대들을 벌주러 온 전사 ‘불닭볶음면’까지… 이들의 손을 거치면, 제품은 펄떡펄떡 생동하는 캐릭터가 되고 브랜드는 그 주인공들이 신나게 헤엄치는 세계관이 되죠.
스튜디오좋이 만들어 내는 광고는 기본 조회수가 백만 단위에서 시작합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아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어요. 상식을 박살 내고, 허를 찔러 버리죠. 단 한 편의 광고도 클리셰를 따르는 법이, 무난하게 버무리는 법이 없습니다.
‘미쳤네’, ‘돌았네’, ‘골 때리네’ 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와중에, 이런 오지랖 넓은 반응도 제법 많습니다. “아니, 담당자 약 빤 거 아닌가요? 이거 광고주들이 오케이한 거 진짜 맞음?” 그런 반응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광고주들입니다. 그게 스튜디오좋의 파워죠. 자기 ‘ㅈ’대로 하는 또라이 집단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열렬히 광고주를 덕질하며 ‘광고인의 본분’을 지나칠 정도로 사수한다는 것. 스튜디오좋 홈페이지 대문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돈을 쓴 광고주에게 소비자가 다시 그 돈을 쓰게 하는 것. 튀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세상을 비뚤게 봐야 섹시한 광고가 나온다 믿는 젊은 광고쟁이 부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이요. 두 사람은 말해요. 둘 모두 광고판에 우연히 흘러들어왔지만, 우연에서 시작된 이 일이 실은 ‘운명’이자 ‘필연’이었다고.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 2회 인터뷰이는 스튜디오좋의 남우리(35), 송재원(36)입니다.
Chapter1. 얼떨결에 광고인, 최고의 회사에서 최고의 기준을 흡수하다
#S1. 소 뒷걸음질 치다 잡은 쥐
“우리야, 이렇게 생긴 집에 사람이 살 수 있겠니?”
건축학도였던 대학생 시절, 남우리가 교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가 그린 설계도 속 집은 대개 ‘그릴 수만 있지 지을 수는 없는’ 집들이었다.
틀이란 틀은 다 깨버리는 이 전위성은 학년이 찰수록 강점이 아닌 약점이 돼 갔다. 건물의 선들이 머리 속에서만 춤출 땐 즐거웠는데 거기에 사람을 넣는다고 생각하니 따분했다.
어느 순간 알았다. “확실해, 이 길은 내 길이 아냐.” 갑자기 생뚱맞게 광고 회사에 들어간 건 ‘건축학과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겠다’는 채용공고의 작은 사족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거기서 찾게 된 것이다. 내가 뼈를 묻을 곳은 이 곳이란 걸.
무난한 게 죄가 되는 광고계야말로, 선 넘기의 천재 남우리가 누구보다 잘 놀 물이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이’ 광고계에 굴러들어온 건, 남우리(이하 우리)씨만의 이야긴 아닙니다. 그의 남편이자 한때 디자인학도였던 송재원(이하 재원)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필이면 그의 지도 교수도 광고회사 출신이었습니다. 그 밑에서 광고 바닥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이내 광고 디자인 공부가 재밌어졌답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넣어본 지원서류가 덥석 합격해버린 거였죠.
두 사람이 약 2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입사한 회사는 유명 광고회사였습니다. 수십 년간 국내 광고 업계에서 부동의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광고기획사 ‘제일기획’.
남우리 다이어리, 내가 학생이었을 때
작품명 <추상이 두 사람에게 미치는 화학적 효과에 대한 고찰>
건축대 출신이었던 우리씨가 졸업 전시에 출품한 작품입니다. 어떤 쓰임새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한 공간에 둘이 들어갔을 때, 둘의 관계에 따라 공간의 평면도가 다르게 해석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광고계엔 유독 ‘어린 꿈나무’들이 많습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 매해 공모전 수상 이력을 차곡차곡 쌓은 지원자가 수두룩하죠.
오직 광고회사, 그중에서도 제일기획 입사만을 위해 수년 동안 예쁜 이력서 만들기에 사활을 걸어온 열혈 지망생들과 견주자면, 우리씨와 재원씨는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었습니다. 광고 바닥엔 전혀 뜻이 없는 채, 다른 물에서 길러졌거든요. 그래서였을까요. ‘광고인은 이래야 해’라는 상식도, ‘광고인은 이럴 거야’란 판타지도 없었던 그들에게, 광고판은 별세계 놀이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환상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냥 마냥 신나는 거죠. 처음엔 다들 입사하자마자 키 카피(Key Copy)가 어쩌고, 카피북(Copy Book)이 어쩌고 그러는데, 하나도 뭔지도 몰랐어요. 다른 신입들이랑 비교가 확 됐죠. 기본도 몰랐으니까. 근데 윗분들은 더 좋아했어요. 제가 하는 말들이 다른 애들이랑은 한참 다르니까.”(남우리)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윗사람들 눈에 그게 남다른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있는 바탕처럼 보였을 거 같아요. 오랜 시간 광고회사 입사를 준비하는 지망생들은 업계의 룰이나 격식을 일찍 배워서, 그 안에서만 놀잖아요? 우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송재원)
스튜디오좋 남우리 CD가 6일 서울 강남구 스튜디오좋 사무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업계 제일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다양한 이유에서 특권이죠. 하지만 이들에게 유의미했던 건 오직 한 가지였어요.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어깨 너머로 보며 훔쳐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오리는 태어나 처음 본 상대를 졸졸 따라다니며 부모로 여긴다고 합니다. 상사 역시 마찬가지예요. 첫 회사에서 어떤 상사를 만나 일을 배우느냐가, 그 뒤로 펼쳐져 있는 수십 년의 시야와 철학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곤 합니다. 그들이 첫 직장, 제일기획에서 만난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우리씨와 재원씨가 일찍이 자기 안의 탁월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줬죠.
* 이하 CD, 4~5명 기획 인력팀을 이끄는 광고회사 팀장급.
#S2. 나를 업어키운 일터의 부모들
송재원이 제일기획에서 만난 첫 상사*는 재원이 가진 ‘연출자’로서의 감각을 금세 알아봤다.
아트디렉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송재원은 그 상사의 팀에서 인쇄 광고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아이템을 맡았다. 그는 자기 눈에만 들면, 연차나 경력 같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묻고 따지지 않고 마음에 든 아이디어를 팔아 줬다. 그의 눈에 드는 게 즐거워, 재원은 누구도 시키지 않았건만 밤을 새며 시안을 뽑았다. 어느 날은 그 상사가 말했다.
“재원아, 이거 크게 인쇄해 와라. 지하철 광고랑 같은 사이즈로.”
서울 2호선 구의역에 새롭게 들어오는 아파트가 광고주였다. 재원은 밤새 핏발 선 눈으로 2호선 노선도를 뜯어고쳐 동쪽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구의역을 정중앙에 놓고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그렸다. ‘새로운 서울의 중심이 된다’는 메시지였다.
그 시안을 보고는 상사가 말했다. 실물 사이즈의 인쇄물을 직접 들고 같이 회의에 참석하자고. 결과적으로 그 아이디어는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원은 봤다.
‘광고주 회의엔 차장급 이상만이 참석한다’는 룰을 깨고, 새파랗게 어린 이십대 막내를 현장에 데리고 간 상사의 진심을. 내 몸과 시간을 갈아넣은 어떤 시도를 누군가는 제대로 알아봐주었다는 것, 그 결과물을 나보다 더 멋지게 또 정성껏 팔아주었다는 것. 그 경험이야말로 중요했다.
* 상사는 제일기획, 포스트비주얼을 거쳐 ‘더툴스’를 창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용민이다.
‘스튜디오좋’이 이름을 알리면서부터, 부쩍 ‘쟤네 내가 키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두 사람과 제일기획에서 함께 일했던 상사들이었는데요. 우리씨와 재원씨는 고개를 격렬히 끄덕이며 이렇게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다 맞는 말이에요. 그 분들이 저희 키운 거 진짜거든요.”
우리씨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 회사에선 제가 제일 못했어요. 늘 기에 눌려 살았죠. 그만큼 잘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멋지게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고마운 게… 그들과 어울려 일했던 경험이 훗날 스튜디오좋을 꾸려나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됐어요.”
재원씨는 처음으로 함께 일했던 상사에게서 ‘본질 집착증’을 흡수했어요. 카피라이터 출신이었던 그는 광고주를 만나고 오면 사전과 옥편부터 뒤졌습니다.
이를테면, 광고주가 래미안이고 새롭게 짓는 아파트가 구의역에 있다면, 각각의 이름이 가진 어원과 유래, 역사부터 찾아보는 게 습관이었죠.
잎사귀에서 시작해 뿌리까지 파고들다 보면, 어떤 브랜드를 만든 본질(本質), 즉 ‘근본적인 성질’이 보이기 마련인데요. 그의 상사는 그걸 재료로 삼아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쓰는 모든 카피 밑엔 브랜드의 뿌리 철학과 연결되는 맥락이 살아있었죠.
그 곁에서 오래 일한 재원씨는 그 습관을 그대로 물려 받았습니다. 그림을 만드는 아트디렉터로선 흔치 않은 방식이었죠.
재원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그림을 그려요. 제가 ‘감독 송재원’을 평가할 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송 감독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그림을 예쁘게 뽑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컷을 가장 '논리적'으로 잡는 사람이다. 모든 장면에 와이(why), 왜 그래야만 하는가가 다 살아있거든요. 첫 상사에게서 받은 영향이에요.”(남우리)
한편, 우리씨는 첫 상사가 가장 많이 한 질문을 지금도 스스로에게 합니다. 밤을 꼴딱 새워 만든 아이디어를 가져갈 때마다 그의 상사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야, 이게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당시엔 그 질문이 야속하고 싫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가 온에어를 타기 전까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우리야, 이게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어? 그 부분이 과연 놀라워? 이 부분이 과연 새로워?’
상사의 그 질문이 한때는 미친 듯 자신을 자라게 한 성장동력이었고, 지금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에너지원이 된 셈입니다. ‘이게 세상을 바꿀 수 있어?’라는 질문은 일종의 상징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꿔놓겠다는 과잉된 자신감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쉽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높은 기준을 의미했죠.
제일기획에서 키운 ‘스좋’만의 감성
“광고 회사에서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남&송이 제일기획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제일기획 시절 남우리, 송재원이 제작에 참여한 광고를 살펴볼까요.
마몽드 연꽃 광고
여성 모델이 등장해 빛나는 피부를 뽐내는 화장품 광고의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부순 광고. 배우 고경표가 '연꽃 클렌징 요정'으로 등장해 인도풍의 노래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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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몽드 연꽃 광고
여성 모델이 등장해 빛나는 피부를 뽐내는 화장품 광고의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부순 광고. 배우 고경표가 '연꽃 클렌징 요정'으로 등장해 인도풍의 노래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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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옥션
2016년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프로듀스101 시즌1 출신 '아이오아이' 멤버들을 모델로 내세웠다. 유머러스한 시트콤 형식의 에피소드를 시리즈로 발행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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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옥션
2016년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프로듀스101 시즌1 출신 '아이오아이' 멤버들을 모델로 내세웠다. 유머러스한 시트콤 형식의 에피소드를 시리즈로 발행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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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상사에게선, ‘혼종의 에너지가 가진 포텐셜’을 배웠어요. 건축대 출신이라 저를 뽑은 분이었어요. 이 팀은 팀원들의 출신 성분이 다 달랐어요. 카이스트 출신 카피라이터도 있었죠. 하나같이 저처럼 광고를 정석으로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 그래서 실무는 되게 느린데, 아이디어가 완전 기상천외하게 나오는 팀이었어요. ‘광고를 다 알고 들어올 필요는 없어’라는 믿음이 그때 생겼죠.
그래서 제가 스튜디오좋을 만들고 나서 광고를 전공했느냐를 신경쓰지 않아요. 비전공자 대 전공자 비율이 70:30일 정도로.
그리고 마지막 상사에게선 유머의 로직을 배웠죠. 어떻게 하면 15초, 30초 안에 시청자를 웃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웃음으로 제품을 각인시키는 방법도 깨우쳤고요.” (남우리)
제일기획의 인재들이 우리씨에게 물려준 세 가지, 1) 타협하지 않는 높은 기준 2) 혼종들이 만드는 폭발적 가능성 3) 유머의 저력은 그대로 스튜디오좋의 핵심 정체성으로 연결됐습니다.
스튜디오좋이 보여주는 소위 ‘골 때리는’ 참신함과 경쾌한 전위성은 하늘에게 뚝 하고 떨어진 게 아니었어요. 태생이 'B급 별종'이기 때문도 아니었어요.
‘업계 최고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제대로 배운 오타쿠(御宅)’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숙련된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정교한 훈련을 받다보니 날 것의 재료로도 탁월하게 ‘맛있는 음식’을 내는 저력이 길러진 거죠.
“사람들은 그저 저희가 그냥 괴짜들이라 이상한 광고를 만드는 줄 알아요. 그래서 제일기획이란 큰 회사의 답답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고 생각하죠. 사실 그건 오해예요. 오히려 저흰 ‘우리가 제일기획를 거친 별종’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봐요. 거기서 진짜 잘 배웠으니까요.” (남우리)
Chapter2. 창업만 하면 꽃이 필 줄 알았는데
#S3. 우리 연애할래요? 그리고… 같이 퇴사할래요?
남우리에겐 ‘애프터할 상대’를 가르는 명료한 기준이 있었다.
“어떤 일 하세요? 그 일은 어때요?”라고 물어봤을 때, “어휴, 힘들죠”라는 푸념섞인 대답이 첫마디로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아웃이었다.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 삶의 목표가 ‘연봉 얼마’인 사람도 아웃이었다.
회사에서 오며가며 마주치다 데이트 신청을 해온 송재원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처음으로 저녁을 함께 먹던 날, 어쩌다 일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그의 눈에 ‘번쩍’하고 불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대뜸 휴대폰을 뒤져 자기 졸업전시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카메라를 총처럼 활용한, 전쟁 콘센트의 광고였다. 남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어머, 이거 자랑할만 하잖아.’ 그때 정확히 알았다. 송재원이 회사에서 남다르게 인정받는 남다른 이유를.
만남을 거듭할수록 이 남자를 제대로 꼬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를 꼬시는 이유가 결혼은 아니었다. 하나의 디딤돌일 뿐. 남우리에겐 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일단은 냅다 ‘결혼 계약’을 맺은 다음, ‘동업 계약’으로 더 지독하게 엮이고야 말겠다는 포부가.
“첫 데이트 자리에서 보여준 포트폴리오를 보고 제가 송재원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감독을 해야겠는데.’
이미 아트 디렉터를 넘어 제작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꾀었죠. 하루 빨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되고 싶었으니, 반드시 함께 일할 감독이 필요했거든요. 연애하면서, 또 결혼하면서 얼마나 살살 꾀었는지 몰라요. ‘같이 이 회사 나가자, 내가 감독하게 해줄게’라고요.” (남우리)
남송 다이어리, 일 덕후들이 연애할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송재원 대표가 제작한 졸업 전시 작품 <freezeShot(2012)>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송재원 대표가 제작한 졸업 전시 작품 <freezeShot(2012)>.
대학생 시절 재원씨는 당시 카메라를 총처럼 사용해 만든 전쟁 콘셉트의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첫 데이트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씨에게 이 작품을 보여줬죠. 두 사람은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무럭무럭 썸을 키워갔습니다. 서로의 가능성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봐 주는 사람이라니,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입사 5년차 카피라이터였던 우리씨는 한껏 목이 말라 있던 상태였습니다. 큰 회사에서 차근차근 승진해 CD를 달려면 못해도 15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동안 ‘일개 팀원’으로 일하며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사기를 팍팍 꺾었죠.
그러다보니 카피라이팅 단계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으면 바로 흥미를 잃었습니다. 나중엔 자신의 아이디어가 팔려도* 왜 팔렸는지를 모르겠고, 온에어 된 캠페인이 ‘대박 흥행’을 해도 이유는 모르겠더랍니다.
무엇보다 ‘자기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요. 고객이 아닌 상사의 니즈(needs)에 맞춰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혼돈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다 뭐가 잘돼도, 다 우연 같았죠.
* 광고 업계인들은, 자신의 안이 뽑힐 때 ‘팔린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씨는 광고주를 직접 만나고 싶었습니다.
‘내 CD님이 어떤 아이디어를 좋아할까?’에 매달리지 않고 ‘나의 클라이언트는 어떤 광고를 원할까?’라는 고민에 바로 뛰어들고 싶었죠.
그게 가능하려면 답은 하나였어요. 작더라도 나만의 회사를 만드는 것, 거기서 스스로 CD가 되는 것.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씨에게, 재원씨는 최적의 비즈니스 파트너 후보였죠. 눈 밝은 우리씨가 보기에 그는 확실히 안 긁은 복권이었거든요. 긁기만 하면 터질, 탁월한 ‘연출가’의 재목을 갖춘 사람.
“촬영 현장에 나가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상상을 자주 했어요. 감독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못 나오는 거죠. 배우들 불러놨고, 세트를 치울 수도 없으니 누구든 나서야 해요. 그럴 때 제가 딱 등장해서 진두지휘를 하고… (웃음) 그러니까 저도 연출이 하고 싶었던 거죠.
근데 옆에서 자꾸 ‘그게 망상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어’라고 하는 거예요.
망설여졌죠.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솔직히 두려웠어요. 각각 5년, 3년을 채우고 나왔지만 아마 우리가 광고업계에서 가장 일찍 독립한 케이스였을 거예요.”(송재원)
그땐 몰랐죠. 창업이라는 게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인지. 그들의 커리어 크레딧에서 ‘제일기획’이라는 명함발을 빼고 나면, 얼마나 남는 게 없을지를요.
#S4. 주당 이천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적어도 차장급(10년차 이상)은 돼야 독립할 ‘짬이 찬다’는 업계에서 5년차, 3년차 이십대 부부가 냅다 회사를 차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감독 직함을 팠다.
회사원 시절, 두 사람이 취미로 운영하던 페이스북 페이지 ‘좋대로 만드는 광고’*에서 의미심장한 한 글자 ‘좋’을 따왔다. 그렇게 ‘스튜디오좋’이란 간판을 걸었다.
얼기설기 대충 회사의 꼴을 갖추고 보니, 그제서야 보였다, 얼마나 대책이 없었는지가. 두 사람 모두 회사 안에선 어딜가나 ‘알파 캐릭터’로 통하는 실력자였다. 회사를 나오고 보니, 그게 다 별 수 없었다.
그때서야 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만들었는데 일은 어떻게 수주하지?’
* 두 사람이 재미 삼아 기업 저격형 패러디 광고물을 올리던 페이스북 페이지.
가만히 있어봤자 그들을 ‘대행사’로 인식해주는 클라이언트가 제발로 나타날 리 없었습니다. 별 수 없었죠, 먹고살기 위해 이 둘은 프리랜서 용병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보따리상이 되어 카피나 디자인을 여기저기에 품팔이처럼 파는 일이었죠.
광고주 미팅에 참여할 수도 없고, 공식적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는 ‘유령’의 신분으로 떠돌았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으니, 영혼을 빼놓고 일했죠.
아이러니하게도 돈은 제일 많이 벌었습니다. 건당 500만 원, 일주일에 부부가 2,000만 원씩을 벌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월급이 300만 원대일 때 회사를 나왔으니, 월급의 3배를 주급으로 번 셈이었죠.
처음엔 돈 버는 재미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한순간이더군요. 어떤 일을 맡아도 쌓이지 않고 휘발되는 것이 반복되면서 ‘현타’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십대의 또래 직장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돈을 벌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커리어’라 부르지 못했죠.
주당 2천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주당 2천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주당 2천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쭉쭉 꽂히는 ‘용병’ 생활을, 두 사람은 채 1년도 못했습니다. 고작 7개월이었죠. 우리씨가 먼저 재원씨에게 물었습니다. "난 솔직히 이거 못 견디겠어. 딱 여기까지 하고 그만두는 게 어때?"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을 뿐, 재원씨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돈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돈이 많이 벌리는 게 신기하다지, 이것 때문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5만6,900원짜리 게임 씨디 같은 거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도 돈 걱정 안 하고 결제하는 거 정도가 바뀌었달까. 반면 내가 하는 일에서 소외된 듯한 느낌은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남우리)
두 사람에겐 ‘스스로 자신의 일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감각이 중요했습니다. 하나의 캠페인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 그렇게 자기 일의 통제권을 제대로 쥐는 것이 업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이었죠.
외주일과 용병일을 그만두고, 어엿한 ‘대행사’의 위치에서 받은 첫 광고주는 ‘티몬’이었습니다.
스튜디오좋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대 회사로 만난 첫 클라이언트였죠. 제작 사정은 곤궁했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우리씨가 직접 모델로 등장했고, 재원씨는 아이폰을 장비 삼아 촬영했죠.
생존 동앗줄이 된 티몬 광고, ‘300만원 주면 500만원 짜리로’
티몬과 함께했던 광고. 당시 남우리 CD가 직접 모델로 등장했던 웹 배너 광고 이미지.
이때 두 사람은 절박했습니다. 2,000만 원짜리 광고를 받으면 3,000만 원짜리처럼 만들었고, 3,000만 원짜리 광고를 받으면 5,000만 원짜리처럼 만들었죠. 돈 버는 건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결과’를 들고 갔죠.
‘우리가 가진 역량과 예산으로 여기서 더 잘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자를 몰아세웠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물으니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쪽팔리잖아요. 우리 이름 걸고 하는 건데.”
아무리 가벼운 기회라 할지라도, 스튜디오좋만의 내공으로 단단한 내실을 채워 굳혀냈죠. 일단 차곡 차곡 쌓았습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의 걸음마다 또렷한 족적을 남기며 걸으면, 하나의 기회가 또 다른 기회로, 그 기회가 더 큰 새로운 기회로 연결될 거라 믿었거든요.
“티몬에서 두각을 보이자, 금세 플레이스테이션이 연락을 줬고, 그 담에 바로 뒤이어 삐에로 쇼핑을 맡게 됐죠. 이 두 개의 반응이 다 터지면서 홈플러스의 SNS 캠페인까지 맡게 됐고요. 이 기회가 저 기회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졌어요.
이때 제대로 기회를 못 잡았다면, 성과를 못 냈다면 아마 무너졌겠죠. 아마 현실을 못 견디고 회사로 다시 들어갔을 거예요.”(송재원)
#S5. 이제 겨우 회사꼴 갖췄는데 임신? 오히려 좋아
‘이제 좀 회사다운데?’ 싶었던 게 창업한 지 꼭 2년 만이었다. 겨우 한 시름 놓나 했는데 엄청난 변수가 끼어들었다. 회사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카피라이터이자, 촬영 조수이자, 온갖 잡일까지 다 떠받치고 있던 남우리가 임신을 하게 된 것.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남 대표가 아니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촬영장까지 종횡무진 누볐는데 결국 막바지엔 ‘강제 입원’을 당했다. 누워만 있지 않으면 아기가 바로 미끄러져 나올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일을 쉬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초조했단다. 간신히 조산을 면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홈플러스’에서 연락이 왔다. ‘너네 이 참에 SNS 캠페인 해볼래?’
남우리는 생각했다. '어? 이거 봐라. 촬영 없이 심지어 조리원에 앉아서도 일할 수 있잖아. 안 할 이유가 뭐가 있어? 게다가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데 당장 하자!'
“광고계는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광고의 정수는 무조건 TV 캠페인이고, SNS는 비주류들,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그래서 연봉도 낮게 주거든요. 전 그게 늘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제가 실은 좀 반골이거든요. 변변찮은 이유도 없이 ‘원래 그래’라는 룰을 보면 다 뭉개버리고 싶어요. 급 나누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드는 거죠.
소셜미디어 캠페인이 실은 무지 어려워요. 손은 많이 가고,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흥행시키려면 TV 캠페인 하나 만드는 거의 2~3배 노력이 들어가요. 그래, 내가 임신도 했겠다? 출산도 했겠다? 오히려 좋아. 이 참에 촬영대신 집중해서 한번 해보는 거야!” (남우리)
홈플러스 소비패턴
홈플러스 소비패턴 SNS 운영
훗날 스튜디오좋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된 ‘세계관 광고'의 원형이 이때 태동했습니다. ‘물건 하나하나에는 각각의 영혼이 있다’는 콘셉트로 접근했죠. 홈플러스 더클럽에서 판매하는 대용량 제품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기하학적으로 나열한 이미지 위에 범상치 않은 스토리텔링이 붙었어요. 우리가 매일 물이나 공기처럼 소비하는 물건들, 한마디로 좀처럼 애착을 가지지 않는 범상한 소비재들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와 별난 콘셉트를 입혔습니다.
첫 게시물을 올리고 한 달 만에 2,000명을, 4개월 만에 2만4,000명을 달성한 뒤 순식간에 10만 명을 모았습니다.
theclub_homeplus나는 수컷 모기. 종족의 번영을 위해 건강한 암컷을 만나 격렬하게 짝짓기를 할 테다. 삼백 마리의 장구벌레를 낳아, 함께 자진모리장단으로 물장구를 칠 테다. 아 근데 잠깐 나른함이 몰려온다. 응? 뭐지, 갑자기 침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건 소문으로만 듣던 홈매트 냄새? 날개가 내 것이 아닌것 같다. 아아 거대한 뭉친 휴지가 다가온다. 인간아 잘못 짚었다…"
"난 비건 이라고… 난 비건 이라고…"
“홈플러스 소비패턴 시리즈와 빙그레우스 흥행 이후, SNS캠페인을 전문으로 하던 친구들이 스튜디오좋으로 많이 이직해왔어요. 그 친구들 대부분이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 자신 없게 ‘저는 TV는 안 해봤고, 소셜밖에 안 해 봐서…’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반문해요. ‘그냥 소셜을 해본 거지, 뭘 소셜밖에 안 해 본거야?’라고요. 반대로 TV하던 애들이 ‘전 TV밖에 안 해 봐서요’라고 하는 거 봤냐고.” (남우리)
시대가 변했습니다. 모두가 공용 TV 앞에 모여 함께 볼 하나의 채널을 고르던 시대에서, 각자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피드를 보는 시대로요. 미디어 환경이 변하며 광고 태우는 공간도 달라졌죠.
‘불만 있어요? 뭐 어쩔 거예요. 우리 ‘좋’대로 만들 건데요!’
‘불만 있어요? 뭐 어쩔 거예요. 우리 ‘좋’대로 만들 건데요!’
하지만 ‘TV=가장 권위 있는 매체’ 시대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광고인들은 아직도 TV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직 ‘TV 15초’만이 광고의 정수라 여기죠. TV광고와 유튜브 광고, SNS광고는 ‘질적으로 급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은 암암리 광고계를 지배한다고 해요. 성골과 진골, 진골과 육두품을 나누는 계급 질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두 사람이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 다시 돌아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둘 다 반골이거든요. 납득이 안 되는 질서엔 절대로 순응하지 않는 그들만의 기골로 ‘웃기는 꼰대들’을 저격합니다.
스튜디오좋이 보여주는 압도적으로 젊은 에너지는 바로 이런 고루한 질서나 전제를 힘껏 깨부수고 밀어내려는 ‘저항의 힘’에서 비롯됐습니다.
Chapter3. 세계관 광고를 열어젖힌 이단아들, ‘빙그레우스’ 홈런을 치다
‘세계관’이 광고계 유행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스튜디오좋의 대표 히트작인 ‘빙그레우스’ 시리즈는 세계관 광고의 시초 격으로 자주 회자됩니다. 정작 우리씨는 꼼꼼하게 정정합니다
“저희가 만든 세계관 광고의 시작은 빙그레우스가 아니었어요. 그보다 더 전에 ‘클레브’가 있었죠.”
‘세계관 광고’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광고를 떠올립니다. 보통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해 서사를 창조하는 공간이 나오죠. 하지만 인물, 사건, 배경 모두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가상이어야만 세계관이 성립하는 건 아닙니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배경이라 하더라도, 다른 질서가 흐른다는 설정만 있으면 ‘세계관’이 될 수 있죠.
리그오브레전드의 프로게임단 T1이 모델로 등장한 ‘클레브’의 광고가 딱 그랬습니다.
클레브는 ‘발광하는 램(RAM)’이 대표상품인 메모리 하드웨어 브랜드인데요. 우리씨의 말에 따르면 ‘소위 머글*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저걸 왜 사나 이해가 안 되는 물건’입니다. 램에서 빛이 난다고 속도가 유난히 빨라지는 것도, 성능이 월등히 좋아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빛이 난다!’ 예쁘다!’가 고작입니다. 그것도 컴퓨터 본체 안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도 않죠.
하지만 컴퓨터를 ‘덕질’하는 마니아 세계엔 본체를 투명케이스로 제작한 뒤 발광하는 내부 램이 보이게 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겐 이 램이 ‘빛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차별성을 가지는 상품이었던 거죠. ‘합리성’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덕후의 아이템 분야를 세상의 잣대로 이해하려 들면 논리는 더 꼬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씨와 재원씨는 이걸 하나의 ‘세계관’의 질서로 정해버리기로 했어요.
* 머글 : ‘일반 게이머'를 지칭하는 은어.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인간을 머글이라 한다.
“불 좀 꺼줄래? 내 램 좀 보게” 프로게이머를 아이돌로
송재원 CD가 직접 그린 SSD 및 메모리카드 브랜드 클레브(Klevv) 광고의 스토리보드. SK T1 소속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 광고 속의 세계는 그저 빛나는 램이 중요한 세상인 거예요. 이 램에서 왜 빛이 나는지, 그게 왜 멋있는 건지 하나하나 설명하려 들지 않아요. 그냥 ‘여기 이런 설정이 있어’라고 선언하고 냅다 믿어버리게 만드는 거죠.
비교하자면 마블 영화가 딱 그래요.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의 개연성과 현실성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영화 못 보죠. 그냥 냅다 아이언맨이 나와서 ‘난 멋진 수트를 입은 히어로다’라고 선언하면, 모두가 ‘응? 이 세계에선 그게 당연한가 보다’하고 수긍해버리는 거거든요. 저희에겐 클레브 광고도 마찬가지였어요. ‘여기 램이 빛나는 세계가 있거든? 그리고 T1의 페이커가 불좀 꺼달래, 자기 램 좀 보게. 어때 멋있지?’ 하는 거죠.” (남우리)
#S6. ‘빙그레우스’의 초기안은 사장님 인스타였다
빙그레의 SNS 캠페인 기획안의 초기 버전은 ‘빙그레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이었다.
당시만 해도, 홍보담당자가 자신의 ‘직장인 자아’를 그대로 드러내며 운영하는 사람맛 나는 게시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을 보여주며 #야근 #회의시간과 같은 해시태그를 붙였다. 잘 빠진 콘텐츠보다 인스타그램이란 무대 뒤에서 분주한 사람을 보여주는 ‘인간극장’형 서사. 인스타그램은 ‘화자’의 매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던가.
스튜디오좋이 내놓은 초기 기획안은 파격적으로 ‘진짜 빙그레 사장님’이 인스타에 등판하는 것이었다. 근데 진짜 사장님을 찍을 순 없잖아. 그러다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사장의 얼굴을 ‘만화 캐릭터’로 만든다면 어때?'
그렇게 나온 빙그레우스의 초기 버전을 보면, 빙그레 과자집에 사는 빙그레 나라 어린이가 주인공이었죠. 붉은 머리 꼬마가 입은 화려한 의상에 주렁주렁 빙그레나라의 과자, 아이스크림이 달려 있는 모습이 초기 스케치였습니다. 그림체도 한참 달랐어요. 동화책에 등장할 법한 크레파스 선이 강조된 버전이었죠.
이 기획안으로 경쟁 PT를 이기고 나서 야심 차게 신입사원도 뽑았습니다. 일부러 크레파스체에 능수능란한 캐릭터 디자이너를 채용했죠.
당당히 경쟁 PT를 따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죠. ‘크레파스풍 꼬마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어쩐지 새롭지 않아 보이는 겁니다. 그때 아예 다른 방향을 제안하게 되죠.
“아예 카카오페이지풍 그림체는 어때? 고채도의 로맨스 판타지풍 만화주인공으로 가는 거지. 주인공은 빙그레왕국의 왕위 계승전에 참가한 왕자로.”
그 여파로 ‘크레파스체 꼬마 캐릭터’를 디자인하기 위해 특채 입사한 디자이너는 팔자에 없던 판타지풍 웹툰 주인공을 그리느라 죽을동 살동 했다죠.
“솔직히 무식하죠. 광고 앞에서 현실적인 생각을 못해요. 이렇게 가면 힘들거야보다, 이렇게 가면 '무조건 대박이야, 그러니까 해야 해’가 더 앞서는 거죠. 광고주한테 보여줬더니 크레파스 캐릭터보다 로맨스판타지 속 왕자님으로 빙그레우스가 더 좋대요. 그래서 그냥 한 거예요. 뒷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일단 대책 없이(웃음).
당장 지금 생각난 게 아무래도 대박날 거 같은데 어떻게 해!” (남우리)
가뿐히 선을 넘는다 그래야 골때리는게 나와
두 사람은 늘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광고가 걸작이 될까’가 머릿속에서 1순위인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광고계의 오랜 관습 같은 건 일찌감치 박살 내버린 그들이지만 이번엔 인건비 사정의 압박조차 뛰어넘은 거죠. 선을 넘어야 신기한 것, 새삼스러운 것이 나오니까요.
그렇게 나온 캐릭터가 붉은 머리에 바나나맛 우유 모양 왕관을 쓴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맛있어)’였죠.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의 왕위계승 일대기
이 곳은 빙그레나라 심장부에 건립된 빙그레왕국. 빙그레오우너 더 마시스의 통치력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그 또한 왕위계승 시기를 맞는다. 허나 그는 하나뿐인 자식 빙그레우스에게 섣불리 왕좌를 내어줄 마음이 없었고 그렇게 시작된 왕위계승전!
빙그레오우너 더 마시스는 빙그레우스에게 ‘빙그레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을 맡긴다. 그의 ‘통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빙그레오우너는 메로나 공작으로 변장해 그의 자질을 시험대로 올리고. 빙그레우스의 선한 마음은 오우너의 인정과 민심을 모두 얻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빙그레우스는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데…
빙그레우스 스토리의 뼈대가 된 것은 로맨스판타지입니다.로맨스판타지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공식이 있어요. 그래서 ‘디테일’만 바꾸면 로맨스판타지는 무한 양산됩니다.
이를테면 서사는 이렇게 끌고 갑니다. 악당의 괴롭힘에 죽는 주인공이, 죽음 이전의 과거로 회귀합니다. 돌아간 과거에서 악당의 전모를 하나하나 밝혀 복수한 다음 왕국의 최고 권력자에 오르죠.
이 방법론을 모든 작품에서 똑같이 써도, 누군가는 돈을 내고 또 보는 이상한 장르죠. 왜 계속 보느냐고요? 그래도 재밌답니다. 로맨스판타지 팬들이 열광하는 요소 중 하나는 ‘작화’인데요. ‘이 작품의 왕녀는 코스튬이 예술이야’, ‘저 작품의 그 백작은 얼굴이 기막히게 절경이야’ 하면서 보는 거죠.
복수 스토리는 잘 질리지도 않아요. 바닥에서 시작한 주인공이 부활하는 서사는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주니까요. 아는 맛인데, 또 그게 제일 맛있는 겁니다.
빙그레 인스타그램에선 어딘가 실없고 허술한 우리의 주인공 빙그레우스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미션을 뚫고 왕위에 다가가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이 과정에선 ‘흑막’이라 불리는 악당도 등장합니다. 로맨스판타지의 전형적 공식이에요.
그냥 들어간 건 없다, 모든 설정에 존재하는 이유
빙그레 왕국의 왕자 '빙그레우스' 와 '빙그레오우너'의 세부 설정 이미지
“로맨스 판타지가 좋은 게 완전히 고인 장르예요. 좀비물이랑 비슷하죠. 몇 개의 상징만 보여주면 ‘어? 이거 로판 패러디네?’ 하고 금방 알아차려요. 그래서 재미있는 거죠. 인스타그램에 고작 4컷 정도로 들어가는 스토리인데 설정이 복잡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이미 문법을 다 알고 있는 장르를 가져온 거죠. 근데, 캐릭터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빙그레의 스테디셀러들을 의인화한 거고.
얼마나 재밌어. 원래 아는 것을 살짝 비틀어야 재밌어요. 아무도 모르는 노르웨이 독립 영화의 포맷을 가져와서 ‘패러디했다’ 하면 진짜로 아무도 모르잖아요.(웃음)” (송재원)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 가장 열광하는 것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 이야기의 문법을 살짝 비틀면서 한 방울의 이질감을 떨어뜨리죠. 뒤집어진 클리셰 위에 유머도 몇 스푼 붓습니다. 거기서 웃음이 터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스튜디오좋이 가장 잘 구사하는 테크닉이에요. 유행하는 코드를 쏙쏙 뽑아와 스튜디오좋만의 톤앤매너로 생경하게 재배치하는 것, 그게 경쟁력입니다.
처음 빙그레 인스타그램을 맡았을 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기획팀의 AE와 카피라이터들이 여러 명 붙으며 캐릭터가 하나씩 추가됐죠.
근육질의 몸매에 구릿빛 피부를 뽐내며 밭일을 하는 빙그레 왕국의 농부 비비빅, 빙그레 왕조를 가장 오랫동안 보필해온 비서 투게더리고리경(아이스크림 투게더), 빙그레우스의 명마 엔초 잘 팔리리(아이스크림 엔초), 섬섬옥수로 리라를 연주하는 옹떼 메로나 부르냥 공작(’올때 메로나’의 패러디), 빙그레 나라의 기사단장 슈퍼콘, 빙전당을 관리하는 쌍둥이 신 엑셀러트 프렌치바닐라와 바닐라까지.
빙그레우스월드의 등장인물
빙그레우스월드의 등장인물
‘투게더리고리경, 엑설런트 쌍둥이, 엔초 더 잘팔리리?’ 이들의 세계로 빠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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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제품의 맛과 특징에서 캐릭터가 될 만한 포인트를 착안해 디자이너가 인물을 만들면, 카피라이터들이 그 위에 개성과 매력을 입히는 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낸 캐릭터를 자기가 덕질하며 디테일한 설정을 추가하다 보면, 어느새 다양한 레이어를 가진 빙그레만의 콘텐츠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죠. 각자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풍덩 빠져 이야기를 뽑아내면서 빙그레우스 왕국은 점점 더 입체적인 하나의 세계가 되어갔죠.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려면, 매주 3개씩 게시물 아이디어를 내야 해요. 그러니까 미친 듯이 소스(soucrce)를 찾게 되죠. 우리 고객의 역사와 문화를 다 알게 돼요. 빙그레는 한글날마다 한글 폰트를 내는 ‘한글 사랑’ 기업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빙그레우스의 팔로어를 ‘추종하는 자’(follower)라고 불러요. 다이렉트 메시지는 ‘직통전갈’(DM)이라고 부르고요. 빙그레 왕국에서 널리 쓰이는 한글 단어들을 모아서 ‘백과사전’까지 만들었죠.” (남우리)
“빙그레우스라는 세계관 뼈대에 기업이 가지고 있는 실제 요소들이 붙으면서 구체화되고 탄탄해지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빙그레를 알면 알수록, 그 디테일이 새록새록 보이는 거죠. 그게 계속 보는 재미고요. ” (송재원)
매주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쓸 소스를 찾는 건, 직원 모두가 광고주를 진심으로 덕질하는 여정입니다. 덕후들이 ‘치일(꽂힐) 만한 포인트’를 하나씩 찾아낸 뒤 콘텐츠 맥락 사이사이에 몰래 숨겨 놓죠. 이건 아는 사람 눈에만 보입니다. 확대할수록 선명해지는 그림처럼요.
여러 재미있는 포인트를 충분히 깔아놓으면, 그 코드들을 소비자들은 다시 해석해 냅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야죠, 마치 양파 까듯이.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있으니 까도까도 새록새록 짜릿한 콘텐츠가 됩니다.
S7. 레전드 ‘빙그레우스를 위하여’의 탄생비화
'빙그레우스를 위하여’ 영상 광고는 남우리가 직접 개척한 기회였다. 클라이언트인 빙그레 측이 ‘별도 캠페인’으로 제시한 브랜딩 광고 제작 프로젝트에 빙그레우스가 주인공인 한편의 뮤지컬 콘셉트를 제안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 지적재산권(IP)를 방치할 이유가 없었다.
실없는 농담, 일명 ‘아재개그’ 마니아인 빙그레우스가 영상의 주인공. 테마는 ‘세상에 웃음을’이다. 그렇게 2D의 세상에만 머물러 있던 빙그레우스는 목소리를 얻고, 옷을 펄럭이며 생명력 넘치는 세계로 진출했는데…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있잖아요… 사실은 예산이 부족해서 뮤지컬을 만든 건데,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어요.”
애니메이션은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드는 장르입니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은 컷수가 늘어나죠. 스토리를 담으려면 아무리 짧아도 길이가 5분은 넘어야 해요. 컷수가 늘수록, 캐릭터가 늘어날수록, 배경이 다양해질수록 단가는 올랐죠. 우리씨의 고심이 깊어졌습니다. ‘제작비’라는 현실 앞에서요.
“그래서 전 항상 대본 쓸 때 감독님 옆자리에 앉아서 물어봐요. ‘송감독, 나 (작품 내) 공간 4개까지 써도 돼?’ ‘캐릭터 한 명만 더 등장시켜도 돼?’라고.” (남우리)
왜냐하면 그 결정에 따라 예산 차이가 너무 나거든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도, 실은 노래 하나만 잘 뽑히면, 많은 게 절약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냥 광고곡(CM송)과는 다르게 뮤지컬 스코어는 노래 자체에 감정의 높낮이와 서사의 기승전결이 다 담겨요. ‘꼭 뮤지컬이어야만 했다’라기보단 ‘이 조건, 저 조건을 다 고려했을 때 뮤지컬이 가장 적합했다’는 거죠.
“광고주가 준 미션과 현실적인 여건이 조합돼서 항상 작품이 나와요. 이 모든 조건을 소비자들은 모르게 하는 게 우리의 일이죠. 작화 늘리지 않으려고 좌우반전하거 겹쳐서 쓴 컷도 되게 많아요. 막 발리우드(인도 상업영화) 영화처럼 연출적으로도 캐릭터들 팍팍팍 점프 시켜서 빠르게 지나가면 같은 그림인 줄 잘 몰라요(하하).
허나 이런 와중에도, 전 ‘작품을 만든다’는 마인드로 해요. 광고지만 콘텐츠다, 예산이 충분치 않아도 우린 여기서 최상의 결과물을 낸다.” (송재원)
광고인들은 대개 ‘현실에 발붙인 드리머(dreamer)들’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과, 언제나 빠듯한 제작비, 그 호락호락하지 않는 두 개의 허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진심을 녹인 콘텐츠를 만들죠. 하지만 그런 조건과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예상치도 못했던 ‘잭팟’이 터지기도 합니다. ‘뮤지컬’을 택한 <빙그레우스를 위하여> 캠페인이 딱 그랬죠. 두 사람은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일한다고 해요.
자신있게 뮤지컬 장르를 택한 다른 이유는 그들에게 든든한 기댈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답니다. 남우리, 송재원의 귀인 작곡가이자 광고 음악 감독인 김연정 덕분이었습니다.
“저희에겐 ‘영혼의 작곡가’님이 계세요. 저희가 만드는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 세계관 광고의 노래를 작곡해주시는 분. ‘생각대로 티~’라는 유명한 CM송을 만드신 김연정 작곡가인데요. 이분은 저희가 가난할 때부터 싼값에 좋은 곡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두고두고 빚을 갚을 수 있게 됐죠.” (남우리)
세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같은 종(species)’임을 직감했습니다. 적은 예산을 들고 가서 간단한 배경음악을 부탁했는데, 연정씨는 무려 4편의 음악을 다 다르게 만들어 들고 왔죠. 보통 그 정도의 예산으로 작업을 의뢰하면 라이브러리 음원을 살짝만 변주해 효과음만 넣는 수준의 결과물을 가져오거든요.
연정씨는 달랐어요. ‘내 이름 걸고 만드는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라는 자기 창작물에 대한 짱짱한 긍지를 가진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만큼 꼬장꼬장한 상대였습니다. 광고주의 수정 사안을 들고 가면, 절대 호락호락하게 고쳐주지 않았어요. “뭐어? 아니 이 기타 반주면 이 악기가 들어가는 게 맞아, 그래야 완벽하게 좋다고. 이걸 왜 바꾸래?”
남&송의 귀인, 작곡가 김연정
용병시절 시작된 인연, CM송부터 스튜디오송까지스좋의 전담 작곡가가 되다
어떻게 만났나?
남우리, 송재원이 갓 제일기획을 나왔을 무렵, 이곳저곳에서 ‘외부 용병’으로 일할 때 만났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 광고 바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단가’나 ‘갑을관계’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 “이게 내 작곡인데, 이 따위로 나가면 돼?”라는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자신이 가장 ‘최선’을 가져오는 사람.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 특유의 깐깐함, 꼬장꼬장함마저도 사랑하게 만드는 ‘찐 직업인’이다.
함께 한 작업
빙그레우스를 위하여, 롯데칠성 새로구미, 삼양라면, 붉닭볶음면, 스튜디오좋 쇼릴 등
“보통 광고계는 갑을 관계가 심하거든요. 광고주-기획사-프로덕션으로 이어지는 위계가 있어요. 그런데 이 연정님은 그런 위계 따위 가뿐히 무시하세요. 노래를 만들다가 특정 부분에서 감정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저희더러 그림을 늘리라고 하시죠. (웃음) 그러면 제작비가 늘어나잖아요?
근데 연정님 말씀은 허투루 들을 수가 없어요. 왜냐, 그 말을 들으면 훨씬 좋아지거든. 그분이 짱이라는 걸 우리가 너무 잘 아니까 믿는 거죠.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만큼 연정님의 전문성을 항상 믿는 거예요. 저는 이 감독님 덕분에 광고계의 모든 업체가 동등하게 일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는 게 당연한 거고, 그러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남우리)
실제 연정씨 피드백에 따라 늘린 장면은, <삼양라면 - 평범하게 위대하게>의 유튜브 영상 중 ‘가장 많이 다시 본’ 장면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빙그레우스는 대박 쳤는데도 “걔네 아직 매출 코딱지만 한 거 하는구나?”
빙그레우스는 대박 쳤는데도 “걔네 아직 매출 코딱지만 한 거 하는구나?”
회사를 차린 지 4년 만에, 제대로 터뜨린 ‘대박’. ‘빙그레우스’는 하나의 현상이었죠.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2차 콘텐츠를 창작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광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무했었습니다. (’후무’하지 않았던 이유는, 스튜디오좋이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플레이를 선보이며 또 다른 팬덤을 만들었기 때문이고요.) 하지만, 광고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해요.
“‘헐, 걔네 아직도 매출 작은 거 하는구나, 원래 영상하던 애들이 인스타그램까지 갔네’라고 광고하는 친구들이 뒤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걸 알았어요. 회사 관점에서 보면, 모든 프로젝트는 화제성과는 별개로 예산 단위로 성적이 매겨지잖아요. 저희더러 ‘뭐 저런 것까지 해, 급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건 시도였고 모험이었다’고 말하기도 싫고. 마음속에 칼을 숨겼던 거 같아요.
우리는 단가만 보고 크게 벌 수 있는 건수만 잡는 사람들이랑 다른 길을 갈 거야. 그렇게 생각했죠. 지금도 가장 중요한 기조예요. 돈으로 광고 캠페인을 선택하지 않는다.” (남우리)
스튜디오좋을 추동한 원동력 중 하나는 ‘네가 감히 우리를 무시해? 지금까지 본 적 없던 것들을 보여주겠어. 넘치게 성공시키겠어, 다시는 그런 말 따위 하지 못하게 하겠어’라는 반동의 힘이었다고 해요.
광고계 관행을 거부하며, 엘리트 주의를 박살내는 이 반동의 힘으로 구축한 ‘스튜디오좋’의 AtoZ, 이어지는 하편 기사에 확인하세요.
용병시절 시작된 인연,
CM송부터 스튜디오송까지스좋의 전담 작곡가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