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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업

한국 영화의 오래된 목격자, 최초의 배우학 연구자가 되다 - 백은하 맨땅브레이커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

경외하는 나의 배우들에게

2023.07.26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스스로 소명을 부여했죠.
‘나는 살아있는 배우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해 기록하겠다.’
이게 나의 유일한 차별성이자,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요.

배우들과 함께 늙어가며
그들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기록하고 싶어요.
늙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

오늘의 커리어 포인트
  • 씨네21 기자
  • 대중문화 웹진 창간
  • 최연소 편집장
  • 황무지를 개척지로
  • 국내 최초 배우학자
오직 커리업에서, 오늘의 뷰 포인트
  • 배우들과의 역사
  • 액톨로지 코멘터리
  • 프레스증으로 만든 역사
  • 배우연구의 원칙

국내 최초 배우연구소, 국내 1호 배우연구자

25년 간 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 배우의 족적을 줄기차게 따라온 사람이 있습니다. 신스틸러 조연이었던 송강호가 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까지, 90년대 패션 잡지의 얼굴이었던 모델 배두나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글로벌 스타가 되기까지. 이 사람은 항성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행성처럼 배우들과 꾸준한 인력을 유지하며 그들의 현재를 목격하고 역사로 기록해 왔죠.

백은하는 자신을 국내 1호 ‘배우학자’라 정의합니다. 영화 전문지 기자, 대중문화 웹진 편집장, 배우 전문 인터뷰어를 거쳐온 그가 경외하는 배우들의 커리어를 남다르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직접 만들어 낸 직업이죠.

2018년 국내 최초 배우연구소를 차렸고, 스스로 소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 후 불과 5년만에, 한명의 배우를 예술가, 장인, 기술자, 스타, 아이콘, 그리고 개인으로 샅샅이 해부하는 연구서 7권을 세상에 내놓았죠. 배우연구소는 내내 소작농이었던 그가 마침내 처음으로 ‘온전한 자신의 몫’으로 갖게 된 경작지입니다. 백은하가 가꾸는 이 작은 정원에선 벌써 예사롭지 않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 4호 인터뷰이는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입니다.

커리어 그래프

Chapter1. 테이프 끊어져라 드라마 돌려보던 소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목격자가 되다

#S1 떡잎부터 달랐던 덕질 유전자

소녀 시절의 백은하는 언제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녹화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재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최애 ‘김혜수’ 언니가 나오는 일일 드라마 <세노야>(1989)가 방송되는 시간은 매일 저녁 8시30분. 하늘이 두 쪽 나도 거실 1열을 사수해야만 하는 경건한 본방사수의 시간이었다. 한 회차도 빼놓지 않고 손수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들은 혜수 언니의 대사를 다 외워갈 때쯤 모조리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텔레비전 속의 ‘언니’들은 남자 형제만 줄줄이었던 부산 소녀의 감수성에 무한한 땔감을 제공헀다. 프랑스 영화 <귀여운 반항아>(1985)를 보고 나선,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반해 사춘기를 바쳤다. 당시 일기를 보면 ‘샤를로트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가 한가득이다. 이 소녀는 유난스러운 성실함, 고집스러운 애정으로 그 여자들을 사랑했다.

‘덕질 유전자’로 따지자면, 떡잎부터 달랐던 사람. 배우의 얼굴을 샅샅이 응시하는 재능은 한 마디로 타고난 셈이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대학생 시절 떠난 미국 어학연수에서도 은하씨는 내내 방에 틀어박혀 비디오만 봤습니다. 국내에선 외화라고는 블록버스터만 겨우 극장에 걸리던 시절이었으니, 다양한 장르의 예술 영화가 즐비했던 그곳의 비디오 대여점은 은하씨의 눈에 ‘노다지광’으로 보였습니다.

이토록 영화와 드라마에 미쳐있는 학생이었으니, 장차 그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요.

1989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세노야 스틸컷

1989년 방영되었던 김혜수 주연의 KBS 드라마 <세노야> 스틸컷과 백은하 소장이 학창시절 김혜수 배우에게 쓴 팬레터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방송 현장부터 찾았어요. 송지나 작가가 집필하는 SBS 단편 드라마 촬영장에서 스크립터로 일을 시작했죠.

딱 반년 했는데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드라마를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별개라는 걸 알게 됐죠.

그 와중에도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서 보는 건, 너무너무 경이로운 경험인 거예요. 그때 청춘스타였던 이병헌을, 막 데뷔한 신인이었던 배두나를 현장에서 봤죠.”

경로를 틀어 향한 곳은 국내 최초 영화주간지 씨네21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전공서보다 열심히 보던 잡지였죠.

한석규·전도연 주연의 <접속>(1997)부터, 안성기·박중훈 주연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계는 끓는 점에 도달하기 직전, 저 깊은 곳에서 작은 기포들이 꿈틀거리던 단계였죠.

은하씨는 뭔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터질 것 같은 그 에너지를 일단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1989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세노야 스틸컷

왼쪽부터 차례대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박하사탕>(2000년), <접속>(1997년)의 스틸컷.

“그냥 ‘물반 고기반’ 같았어요. 뜰채를 들기만 하면 펄떡이는 활어들이 미친 듯이 걸려드는 그런 시대. 이창동, 홍상수, 허진호, 박찬욱, 봉준호 같은 사람들이 매달 새로 나오는 시기였으니까. 개봉 스케줄만 따라가도 매주가 특집호나 다름 없었거든요.”

당시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충무로 전체가 씨네21의 평론 한 줄에 목숨을 걸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스물 다섯의 나이로 은하씨는 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무대의 일원이 됐죠.

어리벙벙한 이 새내기 기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배우 인터뷰’였습니다. 평론이나 개봉작 리뷰는 관록 있는 선배 기자들의 몫이었던 한편, 인터뷰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장르였거든요.

방법론이라든지, 원칙 같은 걸 차근차근 배울 짬은 없었습니다. 선배들 모두가 일당백을 해내며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은하야, 이따 4시에 유지태 오니까, 가서 인터뷰해”라는 명이 떨어지면 일단 출동이었습니다. 그냥 ‘들입다’ 해야 했죠.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아저씨 배우’ 담당이었던 나
내가 누린 가장 큰 행운은
스승 같은 인터뷰이를 만난 것

“처음엔 그냥 주어진 걸 잘해내겠다는 마음이 다였어요.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꽤 재미있는 거죠.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저는 특히 ‘아저씨 배우’ 담당이었는데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씨를 전담 마크해서 인터뷰했어요. 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겨우 삼십대였는데 말이죠. (웃음) <올드보이>(2003)나 <살인의 추억>(2003) 이전이었으니, 그들이 아직 한국 영화의 대표 얼굴이 되기 전이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저를 키우듯이 가르쳤던 거 같아요. 당시 저는 날 선 질문 같은 걸 던질 수 있을 만한 내공 따윈 없는 그냥 어린애였으니까. 할아버지가 손주 앉혀 놓고 이야기 들려주듯, 스스로 멍석을 깔고 대화를 이끌어 줬죠.

제 자질에 비해 귀한 기회를 얻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때 느꼈죠. 인터뷰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인터뷰이를 만나는 것이구나.”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 맛있는 재료를 건네줄 때마다, 적어도 그 재료를 망치는 요리를 해선 안된다는 결의가 솟았습니다.문장 한줄 한줄을 마치 출산하듯 힘겹게 써냈다고 해요.

새벽 4시에 퇴근해 쓰러져 자다가, 오전 10시면 다시 회사에 나와있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매일 전속력의 스프린트를 뛰는 사람처럼 일했어요. 그만큼 일에 필요한 모든 근육이 빠르게 붙던 시기기도 했죠.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1999년에 입사해 2004년까지 딱 5년을 일했는데, 퇴사할 때쯤엔 한 10년은 일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실제로 두 배의 밀도로 일했던 거 같아요. 아이가 자랄 때도 0세부터 5세까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커리어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안전하고 튼튼한 요람에서 건강하게 자란 시간이었죠. ”

커리어 그래프

Chapter2. 웹진에서 IPTV까지:곡괭이 들고 황무지만 갈았다, 쉬지 않고

#S2 Asian girl in new york

24시간 ‘일하는 뇌’가 쉴틈 없던 생활에 멈춤 버튼을 누른 건 서른 쯤이었다. 계속 회사에 남아 선배들처럼 ‘평론가’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자신의 몫이 아니라 생각했다. 평론을 쓰는 게 인터뷰만큼 재밌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10대 시절의 다짐이 떠올랐다. ‘30대는 미국에서, 40대는 유럽에서, 50대엔 교토에서 살아 보겠다’는 그 터무니없었던 공언이. 그렇게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소호의 네일샵에서 ‘아시아인 여성 외국노동자’로 일하며 1년을 살았다. 에밀리 블론트, 클레어 데인즈의 손톱을 손질하며 밥벌이를 했다. 저녁마다 영화관에 출석 도장을 찍고, 뉴욕타임즈를 읽으며 맨하탄을 걸었다. 영화에 대해 쓰는 기자가 아니라 그냥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의 개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보였고, 명확해졌다. 잘할 수 있는 것, 잘 해내고 싶은 것이.

“뉴욕에선 신문과 잡지에 파묻혀 살았어요. 무척 놀랐던 게, 어떤 매체를 봐도 엔터테인먼트 기사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어요. NYT의 주말판에 나오는 커버스토리를 보면, ‘전문지도 이렇게는 못하겠는데’ 싶을 정도였죠. 지역지나 무가지도 비슷했어요. 매체마다 그 규모만 다를 뿐, 기자들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다루는 시각은 하나같이 진지한 거예요. TV쇼나 시리즈에 대한 리뷰도 영화 리뷰 못지 않았죠.

국내의 대중문화 관련 콘텐츠라봤자, 스포츠신문에서 발행되는 신변잡기 연예기사들이 전부였거든요? 영화전문지의 기자들은 ‘영화는 다른 장르와는 구별되는 품위를 가진다’는 순혈주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요. 그러고 보니, 대중문화 전반을 통찰있게 다루는 매체가 없구나. 이거 내가 만들어봐야겠는데, 싶었죠.”

그렇게 창간한 게 웹진 ‘매거진T’였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TV예능, 웹툰, 심지어는 아이돌 팬덤 문화까지 경계없이 다루고 분석하는 웹진이었죠.

캐치프레이즈는 ‘TV놀이터’였습니다. 놀듯이 경쾌하고 발랄하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은 진지함으로 대중문화의 범주 안에 묶이는 모든 장르를 다루겠다는 뜻이었죠.

백은하 소장이 창간한 웹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홈페이지, 기사, 웹툰 모습

백은하 소장이 창간한 웹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홈페이지, 기사, 웹툰 모습

‘황금맥’을 감지하는 남다른 촉이 그에게 있었던 걸까요. 매거진T가 창간하던 때(2006년)는 마침 대한민국의 엔터 지형이 폭풍처럼 변하던 때였어요.

원더걸스와 빅뱅이 선두에 선 2세대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를 넘어서 문화계 전반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고요. MBC의 김태호와 KBS의 나영석이 각각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앞세워 전례없는 시청률 몰이를 하고 있었죠.

그뿐인가요. tvN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에서도 웰메이드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씨네21 시절 못지않게 ‘뜰채만 뜨면 물 반, 고기 반’인 시기였죠.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아직도 기억나는 게 매거진T의 첫번째 커버스토리가 유재석이었어요. <무한도전>과 <1박2일>을 나란히 놓고 처음으로 예능PD들의 세계를 분석하는 특집을 썼었고, SM과 YG라는 기획사를 중심으로 아이돌 팬덤 문화를 파헤치는 기사도 다뤘죠. 대중문화계의 상징적인 인물을 선정해 그 인물을 중심으로 ‘관계도’를 그리는 재미있는 특집도 연재했어요.

다른 연예 매체들이 줄줄이 우리의 형식과 스타일을 따라했죠.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덕력 고사’ 역시 포맷의 원조는 매거진T였어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거진T를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금 와 돌이켜봐도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

백은하 소장의 과거 텐아시아 시절 사무실 모습 백은하 소장의 과거 텐아시아 시절 사무실 모습

웹진 ‘매거진T’ 편집장 시절 백은하 소장의 모습. 당시 그는 최연소 편집장이었다.

은하씨는 열심히 새 밭을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배는 고파도 성취감은 어마어마한 시기였다고 해요. 업계의 트렌드를 가장 최전방에서 이끄는 플레이어로서의 환각은 대단했습니다. 사무실도 없던 시절엔, 그의 손으로 직접 뽑은 후배들과 작은 자취방에 테트리스처럼 구겨져 앉아 일 얘기로 밤을 지새웠죠.

밭 5번 갈 힘으로 10번까지 갈아내는 초인적 힘을 발휘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보내면 처음엔 ‘도대체 뭐 하는 곳인데요’라며 반문하던 취재원들이, 어느 순간 ‘그 기사 재밌게 봤어요’라고 되받아치고, 마침내 ‘우리도 좀 다뤄줘요’하며 먼저 연락해오곤 했죠.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가 금빛 물결로 출렁이는 걸 봤을 때,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나이는 서른 다섯이었습니다.

#S3 내 직업은 사라졌구나

편집장이 되고 난 후, 백은하는 줄곧 외로웠다. 먹고 살 길이 깜깜했을 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정착을 시키고 보니 문득 50대 부장님들이나 느낄 법한 헛헛함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조로해 있었다.

자신이 만든 매체에서 편집장을 내려놓고 나왔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 다섯. 팀장이 되긴 싫은데 취재 기자로는 갈 회사가 없는, 애매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직업이 사라진 것만 같은’ 황망함 속에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그 시절, 한 IPTV 사에서 새롭게 만드는 오리지널 영화 프로그램의 진행자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게 ‘올레티비’였죠.

일단 세 번을 출연하면, 고정 여부는 나중에 결정하겠다는 이 조건부 제안에 은하씨는 과감하게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칩니다. 작게 굴러들어온 실낱같은 기회를 커리어의 새 국면을 열어줄 계기로 만들어 낸 겁니다.

“진행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 제가 ‘인터뷰 코너’를 만들겠다고 역제안을 했죠. 작가님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저희는 이제 막 시작하는 프로그램인데 섭외가 될까요?’ 저한테 맡겨달라고 했어요.

씨네21에서 만든 인연을 총동원해 공효진부터 안성기, 윤여정까지 라인업을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고정’이 됐죠.”

올레티비 스타프리뷰 현빈편 올레티비 스타프리뷰 조인성 편

올레티비 ‘무비스타 소셜클럽’ 스타프리뷰에 출연한 배우 현빈편과 조인성

IPTV의 폭발적인 보급과 함께 올레티비의 ‘스타 프리뷰’는 ‘백은하’라는 이름 석자의 브랜드를 지어올릴 수 있는 도약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기자, 편집장으로 살았던 시절엔 내내 텍스트의 그림자 아래 있었지만, 방송 프로그램의 인터뷰어가 되니 그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했죠. 텔레비전만 틀면 시작 화면에 내내 나오고 있었으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고요.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포트폴리오가 된 셈이죠.

커리어 그래프

Chapter3.배우 연구소:길이 없음 만들어야지, 그게 내 특기인데

#S4 모두가 리뷰어가 되는 시대, 나의 차별성은?

배우를 만나는 일은 백은하가 오랜 시간 돌아가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일에도 관성이 들러 붙었다. 일이란 원래 그렇다. 반복할수록 관성이 붙고, 관성이 붙을수록 활력은 떨어지기 마련.

20분이 채 되지 않는 TV인터뷰는 비유하자면 ‘가두리 양식’이다. 인터뷰어가 포맷에 끼워진 질문으로 ‘가두리’를 치면, 인터뷰이는 그 약속된 범위 안에서 적당히 헤엄을 치는 거다.

언제부터인지,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수준까지만 묻는 버릇이 생겼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순간에 멈춰 되돌아 나왔다. 주어진 과제를 해치우듯 인터뷰를 하다보니 호기심 역시 꺾였다. 위험 사인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핸들을 과감히 꺾었다. 배우러 떠났다. 영국 런던으로. 마흔 둘에 다시 ‘학생’이 된 것이다.

“유튜브 전성시대가 오면서, 영화 리뷰계의 판도가 바뀌었어요. 영상으로 영화를 리뷰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많아지면서, 순식간에 전문가-비전문가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 거예요. 제가 영화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는 사실이 전문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된 거죠.

그렇다면 나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 난 저들이랑 다를 게 뭐지? 선뜻 답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인터뷰어 자리는 유튜버나 전문 MC들에게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었으니까. 아, 여긴 막다른 길이네. 한국에 답이 없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죠.”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내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그 힌트는 뜬금없게도 영국의 서점가에 있었습니다. 영화 서가에 가니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 니로, 톰 크루즈 등 최고의 무비 스타들 얼굴이 큼지막이 찍힌 벽돌책들이 줄줄이 꽂혀 있었어요.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발간된 ‘배우 연구’ 시리즈로, 한 명의 배우가 가진 연기 세계를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책들*이었습니다.

희한했던 게, 이 책들은 인터뷰집으로도 자서전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것들이었어요. 정확히 따지자면 연구서였죠. 그 책들을 손에 들어보고 나니 아, 그제서야 감이 잡히더랍니다.

* BFI(British Film Institute)의 ‘스타 스터디(Star studies)’ 시리즈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배우의 해부(Anatomy of actor)’ 시리즈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 내부 모습. 카이에 뒤 시네마의 ‘배우의 해부(Anatomy of actor)’ 시리즈 등 배우 연구 서적들과 백은하 소장의 저서들이 책장에 전시되어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그때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난 줄곧 부모가 없이 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영국에 우리 아빠, 엄마가 있었네? 그런 기분이었어요.”

당시 아시아 필름 섹션을 보면 봉준호, 박찬욱에 대한 책은 있어도 송강호나 최민식에 대한 책은 없었습니다. 연기라는 행위는 언어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배우는 영화산업에서 늘 가장 마지막에 수출되는 상품일 수 밖에 없어요.

국내 거장 배우들이 말의 뉘앙스나 억양, 말맛의 자연스러움 등을 아무리 잘 살린다 하더라도, 외국인 관객은 그 디테일을 감지하기 어려울 수 밖에요. 비영어권 배우들이 늦게 발견되는 이유 중 하나죠.

“하지만 한국 영화에 대한 해외 관객의 관심도가 높아질수록 한국 배우 역시 주목을 받으리라는 게 명백하게 예상이 됐어요. 그들을 공식적으로 연구한 자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 바로 이 일을 내가 해봐야겠다.”

‘덩어리’에 가까웠던 목표는 배움을 거듭하며 점차 형태와 양감을 가진 모습으로 조각됐습니다. 은하씨는 이미 나와 있는 배우 연구 방법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청사진에 맞는 것을 취사 선택해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었죠. 영화기자 시절부터 쌓인 네트워크와 인터뷰어로서 연마한 자질은 그만의 ‘차별 포인트’가 됐습니다.

백은하 소장의 과거 텐아시아 시절 사무실 모습 백은하 소장의 과거 텐아시아 시절 사무실 모습 백은하 소장의 과거 텐아시아 시절 사무실 모습

영국 런던대 유학 시절 백은하 소장의 모습(아래)과 액톨로지의 기초가 된 졸업 논문(위). 이 논문의 주제는 백은하 소장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메릴스트립’이었다.

“영국이나 미국의 자료를 살펴보면 연구 대상이 대부분 과거의 인물들이에요. 무성영화 시대의 단골 주인공들, 시대를 풍미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 스타… 이미 세상을 뜬 사람들의 공적을 낱낱이 해석하는 연구가 특히 많았는데, 그건 어떻게 봐도 제 몫이 아닌 거예요. 그럼 배우 연구 분야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현재 가장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동시대 배우들을 직접 만나는 거더라고요.

스스로 소명을 부여했죠. ‘나는 살아있는 배우들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목격해 기록하겠다.’ 이게 나의 유일한 차별성이자,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운행을 멈춘 우아한 열차의 지난 행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탄탄한 운행 기록을 보유한 채 지금도 힘차게 달려나가는 배우에게 돋아나는 기대감이야말로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이 작업을 하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생을 마친 부자의 유품정리사보다는 가장 열정적인 일꾼의 회계관리사 같은 마음으로 쓰일 ‘액톨로지 시리즈’는 앞으로 계속 궁금한 배우의 이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배우 배두나, 서문 중에서)

런던대(University of London)에서 1년 간의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2018년, 은하씨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정면에 내세운 ‘백은하 배우연구소’를 열었습니다.

‘배우에 관한, 배우에 의한, 배우를 위한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 배우 전문 연구소’라는 소개를 달고 출발했죠.

그리고 독자적으로 만든 배우연구 방법론인 ‘액톨로지(actorology)’를 제안합니다. 한 명의 배우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부하고 분석하는 이 방법은 <배우 이병헌>(2020)과 <배우 배두나>(2021)라는 묵직하고 정교한 책을 통해 구현되죠.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배우연구소를 만들기 전까지의 저는 내내 소작농이었던 거 같아요. 빌린 땅을 경작하는 사람. 그 밭의 주인이 ‘이래라 저래라’하면 그 입맛에 맞춰야 했죠.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 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고요.

배우연구소는 제가 처음으로 갖게 된 제 소유의 경작지예요. ‘백은하’라는 저의 이름을 맨 앞에 단 것도 일종의 메시지죠. 이제 이 땅엔 누구도 함부로 깃발을 꽂을 수 없다는 그런 메시지.”

액톨로지 시리즈의 책들은 커다랗고 늠름해요. 아트북을 연상케하는 큼지막한 크기의 하드 커버를 열면, 300쪽이 넘는 방대한 텍스트가 쏟아지죠. 내용뿐 아니라 물성 면에서도 공들여 지은 책이다 보니 가격은 6만 원에 육박합니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혹은 여행지의 노천카페에서 가볍게 들고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에요. 읽는 사람 역시 정자세를 갖추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책장을 넘겨야만 할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책이죠.

이 두 권의 책엔 예술가, 장인, 기술자, 브랜드, 한 시대의 아이콘, 슈퍼스타, 누군가의 동료, 한명의 시민이자 개인으로서의 이병헌과 배두나의 모습이 담겼죠.

커리어 그래프

Chapter4.그래서 백은하가
이 모든 고생을 ‘사서’하는 이유

#S5. 말하는 대로

검색 엔진에 ‘백은하’라는 이름을 넣으면, 2004년 씨네21을 퇴사하며 한 인터뷰가 첫 페이지에 나온다. 19년 전, 스물아홉이었던 그는 첫 책인 <우리시대 한국배우>를 든 채, 앳된 표정으로 웃고 있다. 그 시절 인터뷰라는 게 으레 그렇듯 마지막 멘트는 당찬 다짐이다.

“장기적인 전망은 배우 인터뷰 전문기자다. 첫 술에 배부르려고 자극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가 될 생각은 없다. 그들과 편하게 얘기하는, 그들과 같이 늙어가는 기자가 되고 싶다.”(한겨레21 2004)

그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사십대의 끝무렵에 와 있는 백은하는 오래 전, 이십대의 자신이 호기롭게 쏘아올린 주문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배우 전문 기자를 넘어 국내 최초 ‘배우연구자’가 됐다. 이병헌, 배두나, 박해일, 전도연, 송강호…

그 때 그 시절 배우들과 함께 ‘현역’으로 함께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말하는대로’ 된 셈이다.

“제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그 말이 이뤄진 거네요? 열심히 살았네! (웃음)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해외 영화제에 처음 갔을 때 유독 기억에 남았던 풍경이 있어요. 프레스룸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거예요. 외국의 영화 기자들은 저토록 나이가 들어서까지 현역으로 일을 하는구나.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배우들과 함께 늙어가며 그들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기록하고 싶다. 늙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은하씨와 마주앉은 배우들의 표정은 유독 부드러워요. 인터뷰어를 오랜 벗처럼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느껴지죠. 그 비결을 물었더니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도 그럴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엔 시간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이를 테면 송강호 배우가 어제 막 입사한 신입 기자랑 이야기를 나눈다면 둘 사이에는 해야만 하는 얘기가 너무 많아요. 인터뷰어가 공부해야 할 정보의 양도 방대하고요. 그걸 한 번에 따라잡는 건 무척 힘든 일이죠.

저랑 만난다면, 우리는 가장 ‘현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서로의 과정을 이미 다 봐왔기 때문에. 역사를 함께한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 귀할 거 같거든요. ”

차세대 영화계를 이끌 젊은 배우들을 연구하는 시리즈 ‘넥스트엑터’의 마지막 장은 언제나 같은 질문으로 끝납니다.

‘10년 후의 넥스트엑터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은하씨는 그 질문이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10년 후에 내가 너를 다시 만나러 올 것이다’라는 일종의 예고인 거죠. 배우와 하는 약속인 동시에 자기자신과 하는 약속이기도 해요. 10년 후에도 여전히 배우의 곁에 있는 인터뷰어이자 연구자로 남아있고 싶다는 메시지죠.

#S6. 말하는 대로

그는 살면서 늘 그랬다.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 하고 싶은지,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 자신을 향해 쉬지 않고 물었다.

인간의 욕망엔 다양한 불순물이 끼어든다. 명예욕, 공명심, 속물적인 욕심. 그런 욕망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당장 내 마음이 편하자고 스스로를 속였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컸기에.

이기적이라는 핀잔을 들을지언정 나다운 선택을 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래서였는지 실패도 후회로 남진 않았다.

은하씨가 하는 일은 대개 ‘사서 하는 고생’입니다. 한 배우의 세계를 알기 위해, 그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다시 보고,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 수십 명을 인터뷰하죠.

연구 대상이 바뀔 때마다 배우가 가진 캐릭터에 맞는 고유한 방법론을 새로 개발합니다. 배우의 세계란 그렇거든요.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최고이기에 누가 더 최고인가를 가려낼 수 없는 세계. 그러니 배우 연구자는 매번 그 고유한 경로를 따라가 설명해내야만 하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 사람에 대해 쓴다는 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때로는 연구대상이 된 배우조차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때도 많거든요.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일을 하는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 아주 오래 생각해 온 사람다운 단단한 표정으로 은하씨는 무려, 세 가지 답을 내놨습니다.

첫 번째 답은 배우의 연기를 소비하는 관객으로서, 두 번째 답은 배우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연구자로서, 세 번째 답은 ‘백은하’라는 개인으로서 내놓은 답이었죠.

“좋은 배우에 대해 쓰는 건, 한마디로 그가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지지하는 행위예요. 좋은 배우에게 더 많은 관객의 관심이 투자되게 하는 것, 그렇게 배우가 더 큰 힘을 받게 하는 것. 이런 작은 선순환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연구했던 누군가가 지루하고 관성적인 연기를 한다면 절대로 박수 쳐 줄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저의 모든 작업은 다음 세대 배우들을 위한 백서예요. 이병헌과 배두나, 박정민과 고아성, 안재홍과 전여빈, 변요한의 뒤에 따라오는 ‘넥스트 액터’들은 이들이 일구어 놓은 신작로 위에서 고속도로를 깔아야 하니까.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취와 경험이 ‘개인의 차원’에서 휘발되지 않고 축적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록을 남기는 거죠. 이들의 시행착오를 디딤돌 삼아, 박지후(2003년생)나 김시아(2008년생) 같은 배우들은 더 멀리 가봤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서.”

왓차의 배우연구소 촬영장에서 녹화 중인 김선영 배우 무주 산골 영화제에서 고아성 배우와 백은하 소장의 모습

배우 김선영, 배우 고아성을 인터뷰 하고 있는 백은하 소장의 모습.

은하씨는 믿는다고 합니다. 고도화된 ‘덕질’은 생태계를 건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요. 배우에 대한 그의 탐구심은 좋은 씨앗에 더 맑은 햇살을 쐬어주고 싶은 농사꾼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뒤따라 온 마지막 답변, ‘백은하 개인’으로서 생각한 ‘왜 이 일을 하는가’는 그저 간명했습니다.

“결국 나 좋자고 하는 거예요. 그게 제일 가장 큰 이유인 거 같아요. 그냥 즐거워요. 호기심이 향하는 일을 하다 보니 즐겁고, 즐겁다 보니 또 호기심이 생기고.

배우에 대한 기록을 써서, 연구대상이 된 배우나 그의 팬덤의 환호를 받고 싶은 기대는 없어요. 그런 걸 기대했다면 자서전을 써줬겠죠. 그거는 아니에요. 때로는 혼자 엉엉 우는 날이 잦았을 정도로, 힘든 고행길이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커리어 그래프

Epilogue. 당신이 깬, 아니 ‘일군’ 맨땅은?

은하씨에겐 불문율에 가까운 엄격한 잣대가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는 것이지요.

누군가 ‘당신 하는 일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그는 언제나 ‘배우연구소 소장’이라고 대답합니다. 기자님, 작가님, 편집장님과 같이 이전에 몸담았던 직함으로 불리는 걸 원치 않아요.

“회사를 나와서 소속 없이 일할 때 민망한 상황을 자주 겪었어요. 객원 필자로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 그쪽 편집기자가 저를 ‘칼럼니스트 백은하’라고 쓰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전화해서 정정해달라고 했죠. ‘저는 칼럼을 업으로 하고 있지 않은데 왜 칼럼니스트라고 쓰시죠?’라고요.

그럼 대개는 황당해해요. 그럴듯한 직함을 붙이면 말 그대로 그럴듯해 보이니 필자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이상한 결벽일 수도 있지만, 전 이게 참 중요해요. 제 직업의 정의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으면 좋겠어요. ‘나, 왕년에 이런 거 했던 사람이야’라는 태도로 부유하는 사람이 제일 꼴보기 싫달까! (웃음).”

백은하 백은하배우연구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7.12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이 7월 11일 서울 종로구 배우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일하는 나에게 중요한 건
일하는 현재뿐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일의 원칙은 간명합니다. ‘일하는 나에게 중요한 건 일하는 현재뿐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의 꿈에 지나치게 저당잡히지 않고, 오직 눈앞의 현재에 흠뻑 자신을 던지자는 뜻이지요.

어쩌면 자신의 일을 자신의 언어로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일 안에서 길을 잃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길찾기의 첫 단계는 현위치를 제대로 입력하는 거잖아요.

매순간 제 주소를 바르게 알고자 하는 그에게 마지막 물었습니다. 당신이 깬 맨땅은 무엇인가요?

“저는 맨땅을 깬 사람이라기보다 맨땅을 일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지난 24년을 돌이켜 보니 저는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았어요. 물론 그 시도가 언제나 성공했던 건 아니에요. 약간의 실패와 성공이 뒤섞여 있었기에, 제가 파낸 땅이 과연 옥토가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아, 근데 이런 자신감은 있어요. 적어도 이 땅은 앞으로 완전히 버려진 땅은 아니겠구나.”

물론, 이 엄격한 현재주의자의 곡괭이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은하씨가 자신의 ‘인생 뮤지컬’로 꼽은 <애비뉴Q>의 뮤지컬 넘버 ‘For Now’를 들어봤습니다. 20년 전 뉴욕에서 보낸 1년의 기록을 담은 책 <안녕 뉴욕>(2006년)엔 뮤지컬을 처음 봤던 당시의 소회가 자세히 적혀있더군요.

백은하소장이 자신의 ‘인생 뮤지컬’로 꼽은 <애비뉴Q>의 뮤지컬 넘버 ‘For Now’ 영상

“’오늘을 살겠어(for now)’라고 노래하던 그들처럼 오늘만은, 이 시간만은, 아니 이 짧은 순간만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겠다. 그렇게 치열한 순간이 모이고, 시간이 모이고, 날이 모이고, 달이 모이면 어느 순간 내 인생 전체가 충실하게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대책 없는 판타지, 맹목적인 믿음이라 해도. 이제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최선임을 안다.”

<안녕 뉴욕>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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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Chapter1.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목격자 되다
  • Chapter2. 웹진에서 IPTV까지: 곡괭이 들고 황무지만 갈았다, 쉬지 않고
  • Chapter3. 배우연구소: 길이 없음 만들어야지, 그게 내 특기인데
  • Chapter4. 그래서 백은하가 이 모든 고생을 ‘사서’하는 이유
  • Epilogue. 당신이 깬, 아니 ‘일군’ 맨땅은?
백은하 소장 프로필 사진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기자로 시작해 웹매거진 「매거진t」 「10 아시아」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영국 런던대학교(Birkbeck, University of London)에서 배우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18년 백은하 배우연구소를 열었다. 「우리시대 한국배우」(해나무, 2004)을 비롯해 백은하 배우연구소에서 펴낸 「넥스트 액터」, 「액톨로지」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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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맨땅브레이커 백은하 소장이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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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

어릴적 당신의 시간을 몽땅 빼앗았던 것이 있나요? 그것이 지금 당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나요?

Q. 2

당신의 커리어에서 일하는 근육이 가장 왕성하게 붙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당신의 일근육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Q. 3

당신만의 언어로 당신의 일을 정의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