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의 음악 감독이 ‘오 형사님’이라 불리는 이유 - 오민영 베테랑
베테랑의 한끗 vol.4
뮤지컬 ‘시카고’의 음악 감독이
‘오 형사님’이라 불리는 이유
2024년 5월 31일
잠깐! 이 페이지는 한국일보 커리업 연재물 ‘베테랑의 한 끗’ 전용 화면입니다. 오디오와 고화질 사진이 어우러져 제공되는 특별한 기사를 만나보세요.
영상 재생영상 중지
“난 누구의 여자도 아냐, 내 인생을 사랑해!
and all that Jazz! that Jazz!”
(뮤지컬 ‘시카고’의 넘버 ‘All that jazz’ 중)
“선생님, 이 음 안 들리세요? 아뇨, 틀렸어요. 라, 라, 라, 이 음에 맞춰서요. 다시 내보세요.”
19년 전 대학로, 뮤지컬 ‘유린 타운’의 연습 현장. 스물여섯 살의 반주자가 피아노 건반을 땅땅 누르며 열을 올린다. 맞은편에 서서 쩔쩔매고 있는 상대는 연기 경력 21년 차, 마흔한 살의 고참 배우다. 좌중이 수군댄다. “뭐야, 어디서 온 친구예요?” “칼린 샘이 데려온 반주자라는데요.”
‘할 말은 할 줄 아는 성격’을 높이 샀던 것일까. 2013년, 음악감독 박칼린은 그를 뮤지컬 ‘시카고’의 부지휘자로 발탁한다. 그는 울상이 됐다. “제가 어떻게 남들 앞에 서서 지휘를 해요? 눈치 보기 바빠서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는 성격인데···.” 동료들은 입을 떡 벌리며 되물었다. “그게 눈치를 본 거였어?”
2024년 현재, 뮤지컬 음악감독 오민영(45)씨는 뮤지컬 ‘시카고’의 아홉 번째 공연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휘자 자리에 오른 지도 10년째다. 배우 수십 명이 함께 노래하고 있어도 그의 귀는 ‘누가 틀린 음을 내고 있는지’ 정확히 잡아낸다. 배우들 사이에서 ‘오 형사’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오 감독은 한 번에 ‘두 탕’ 이상의 공연을 뛰지 않기로 알려진 감독이다. 이름난 베테랑 감독들은 대개 여러 공연을 동시에 진행한다. 공연 기획사도 ‘그러려니’ 하고 눈감아 주는 게 불문율이자 관행. 그는 다르다. 한 시즌에 딱 하나의 작품만 한다. 모든 리허설과 연습을 직접 이끌기 위해서다. “다시~”, “다시!”, “이거 아니잖아, 다시!” 그의 연습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다. 웬만해선 타협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없다.
그래서일까. 뮤지컬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메가 히트작, ‘아이다’, ‘렌트’,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고스트’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뮤지컬계의 베테랑, 오민영 음악감독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뮤지컬 ‘시카고’ 연습실에서 지난달 22일, 26일 이틀에 걸쳐 만났다.
베테랑의 도구 :
메트로놈에 의존하지 않는다
뮤지컬과의 인연은 ‘열병’ 으로 시작됐다. 꿈을 향한 갈망이 빚어낸 열병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온몸이 펄펄 끓었던 열병.
2003년, 피아노 전공으로 음대를 졸업하고 막 유학길에 올라 뉴욕에 머물 때였다. 떨어지지 않는 열에 며칠을 시달리다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신장에 생긴 급성 염증 때문이었어요. 치료 중에 대학 동기한테 전화가 왔어요. 한국에서 쉬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나 해보래요. 뮤지컬 연습 현장에 가서 리허설 반주를 해주는 건데 간단하다고.”
그때까지 한 번도 뮤지컬을 본 적이 없었다. 클래식이 아닌 곡을 연주해본 경험도 없었다. 호기심이 그를 뮤지컬 연습장으로 이끌었다.
기껏해야 스태프 두세 명 정도가 모여있을 줄 알았다. 웬걸, 연습장 문을 열자 20여 명의 배우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연습 현장이었다. 자신을 ‘음악감독’으로 소개한 외국인은 한국어를 토종 발음으로 구사해서 놀라게 했고, 현장을 압도하는 서슬 퍼런 카리스마로 두 번 놀라게 했다. 박칼린 음악감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박 감독은 악보부터 던져 줬다.
“일단 쳐 봐.”
악보를 펼쳤는데 ‘아뿔싸’였다. 장르가 생소한 건 둘째 치고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클래식 음악판에선 그도 나름 ‘초견의 달인’으로 통했다. 처음 본 악보로도 바로 연주가 가능했다. ‘뭐가 그리 크게 다르겠냐’며 자신만만했는데, 오산이었다. 장르가 바뀌니 ‘초견’도 쉽지 않았다. 일단 곡 진행이 너무 생소했다. 이제 와 도망갈 수도 없었다.
혹독하게 깨지며 6개월이 지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리허설 반주 알바생 신분을 벗어나 오케스트라 피트에 연주자로 앉아 있었다. 음대 입시 때보다 피나게 훈련한 결과였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영영 타지 못하게 됐다.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재밌어서’예요.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이후로 줄곧 내 인생엔 클래식밖에 없었거든요. 새로운 세계를 엿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진짜 이 길을 원한 건가? 아니면 이것만 해서 이것밖에 할 줄 몰랐던 건가.’ 무엇보다 뮤지컬엔 서사가 있다는 게 좋았어요. 이야기가 있는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다이내믹’이 있거든요. 거기에 확 끌린 거죠.”
클래식이 아닌 뮤지컬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튼 전환점이었다.
그 후 21년이 흘렀다.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2008년, 이후 재즈부터 록, 팝, 오페라, 국악까지 다뤄보지 않은 장르가 없다.
색소폰과 트럼펫이 참여하는 브라스 밴드부터 기타와 드럼이 뼈대를 이루는 록 밴드까지 직접 꾸린다. 배우들의 보컬과 발성도 직접 지도한다. 연습 내내 배우들과 함께 노래도 부른다. 곡을 해치지 않는 최적의 호흡 지점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다이내믹함’에 끌려 뮤지컬계에 입문했다지만, 극단을 오가는 장르적 모험이 버겁지는 않았을까. 그는 말한다. 오히려 ‘클래식의 문법’에 모든 장르를 관통할 수 있는 키(key)가 있었다고.
“저는 메트로놈에 의존하지 않아요. 클래식을 하며 만들어진 버릇이에요. 클래식은 연주할 때 박자를 정해 놓지 않거든요. 구간에 따라 음을 확 늘였다 줄이기도 하고, 템포를 마구 몰아치다 잦아들게도 하고.
그렇게 선율 안에 깊이감을 만드는 거죠. 같은 곡이라도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에 따라 풍부함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클래식의 선율엔 수억 개의 층위가 쌓여 있다.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가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을 테니까. 그만큼 표현의 노하우가 다양하단 얘기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클래식의 노하우를 뮤지컬에 적용했다.
“제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이더라고요. 멜로디 위주의 짧은 노래 안에도 굴곡과 깊이를 만들 수 있다는 거. 표현만 달리해도, 똑같은 스타카토가 완전히 다르게 들릴 수 있거든요. 곡을 쓰는 작곡가들도 이 부분에 대해선 잘 몰라요. 곡을 쓰는 것과 해석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기타나 드럼을 연주하는 실용 음악 전공자들은 메트로놈이 꺼진 연습실을 어색해했다. ‘오 감독 지휘는 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냐’, ‘다른 감독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연주자들에겐 템포에 대한 기준이 딱 하나였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소리 안에도 깊이와 너비, 농도와 밀도가 있음을 이해시켜야 했다.
이따금 연주자들의 불만이 터질 때마다 그는 고집스럽게 반박한다. “템포를 정해두면 편하겠죠.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템포에 맞춰 흐르지 않잖아요.” 노래하는 배우들에게만 감정을 표현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연주에도 감정이 실려야 한다고 믿는다.
“음악은 거짓말을 못 하거든요.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니까.”
**최성대, 신동아, 강동주, 유철호, 계채영, 곽대성, 이승일, 하유진, 이희중, 김주현, 전성혜, 권오경, 김양희, 김영은, 전진, 장이산, 이현지
베테랑의 루틴 :
무한 피드백
그의 연습 현장엔 공감각적 묘사가 넘실댄다.
질문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숨은 어디에서 쉬는 게 편한지, 고음이 섞인 클라이맥스 부분은 어떤 느낌으로 살려야 좋을지.
피드백 → 질문 → 피드백 → 질문의 무한 반복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의 연습실에서 수만 번 반복되는 루틴이다.
“그래서 그런가, 연습이 한 번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돼요.”
그의 연습 스타일을 처음 경험하는 배우들은 낯설어한다. 다른 작품 연습에선 음, 박자만 맞으면 술술 넘어가는데, 이렇게 브레이크가 자주 걸리는 연습은 처음인 거다.
그의 방식이 생소한 배우들은 맞받아치기도 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해 주세요. 맞출게요.” 남들 하는 대로 지시를 따르는 게 제일 편하다는 얘기다. 그럴 때마다 굴하지 않고 설득한다.
“의견을 묻지 않으면 스스로도 고민을 안 해요. 질문한 후에 하는 노래는 달라도 확실히 달라요. 이유가 실리니까, 또렷해지고 힘이 생기죠. 제가 연습 때 자주 하는 지적이 ‘의도가 없다’, ‘영혼이 없다’는 말이에요. 모든 표현엔 ‘의도’가 느껴져야 하거든요. 본인조차도 내 소리의 의도를 모르고 있다? 텅 빈 소리가 되는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 배우들도 저절로 안다. 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두 귀로 확인하니까. ‘함께 찾은 답’만이 최선의 답이라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일 테다.
올해 ‘시카고’에 새로 합류한 6년 차 뮤지컬 배우 김양희씨는 첫 연습이 끝나자마자 그를 쫓아와 말했다. “감독님, 이렇게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만들어가는 연습은 처음이에요.” 관객으로 보면서도 감탄했던 압도적인 완성도의 비결을, 배우로 참여하며 알게 된 거다.
뮤지컬 배우 김양희 “오 감독님은 디테일 전문가예요. 다른 음악감독들은 앙상블 배우(뮤지컬에서 조연으로 합창 및 군무를 담당하는 코러스 배우)들을 지도할 때 음정이나 박자 위주의 피드백을 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 감독님은 특정 대목에서 어떤 뉘앙스가 묻어나야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연기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잡아줘요. 소리를 만드는 건 음악감독의 몫이지만, 그 소리에 연기를 묻혀서 질감을 만드는 건 배우의 몫이거든요. 오 감독님은 그걸 함께 고민해주는 거예요.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시카고’가 꿈의 작품이라 여겨지는 이유를 확인한 순간이었죠.”
디테일을 잡는 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서 하는 고생’이다. 이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뭘까. 사연이 있다.
21년 전 피아니스트로 처음 참여한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첫 공연을 마친 뒤였다. 우연히 연주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쟤, 쟤 때문에 합주가 힘들어.” 독주하듯 ‘자기 멋대로’ 연주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이 넘칠 때였거든요. 클래식에선 어딜 가나 피아노가 주인공이에요. 콘체르토에서도 오케스트라에서도 그래요. 다른 악기들이 다 피아노에 맞추죠. 뮤지컬도 그렇게 치던 버릇대로 한 거예요.
다른 악기들이 첫 음을 내기도 전에 혼자 먼저 나가고… 그러니 뒷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죠. ‘지휘를 보는 건 맞냐’, ‘혼자만 신났다’ 등등. 공연 마치고 내심 ‘잘했다’고 뿌듯해했었거든요. 충격을 받았죠. 아, 나는 지금까지 내 소리에 혼자 취해있었구나.”
그 시절 그의 머릿속엔 ‘함께 소리를 맞춘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그전까진 골방에 틀어박혀 같은 부분만 7시간씩 연습하곤 했었으니까.
그의 눈빛, 손의 움직임은 모두를 향한 ‘사인’이다
충격은 기회였다. 고립된 세계를 벗어날 기회. 오직 자기 소리에만 향해있던 귀의 감각을 바깥으로 열었다. 어려웠지만 짜릿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점이야말로 뮤지컬의 정수라고 느낄 만큼. ‘배우고 싶다’고 다가가자 배우들도, 연주자들도 그의 스승이 되어줬다.
“2005년, ‘유린 타운’이라는 작품에 처음 피아노 컨덕터(피아노를 치며 지휘를 겸하는 자리)로 참여했어요. 피아노 컨덕터를 할 때는 몸을 내키는 대로 움직여선 안 돼요. 지휘자의 눈빛부터 어깨, 손의 움직임까지 모조리 밴드 연주자들에게 보내는 ‘사인’으로 해석되거든요. 원래도 연주할 때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인데, 그걸 모조리 통제해야만 했죠. 혼자 습관을 잡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다행히 현장의 모든 배우, 연주자들이 전부 붙어서 절 도와줬어요. 당시 제가 전체 스태프를 통틀어 가장 막내였거든요. 일일이 녹음해서 들려주면서 ‘여기 들려? 네가 준 사인이랑 타이밍이 안 맞아’ 피드백을 주면서. 그래서 고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공연이 끝날 때마다 ‘난상 토론’을 벌였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그 시간이 좋았다. 매일 같은 레퍼토리를 공연해도, 매일 새로웠을 정도로.
그래서 지금도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배우들에게 전할 ‘피드백 노트’를 만든다. 무대 위에선 자기 소리가 안 들리는 법이니까. 이 노트엔 한 공연이 끝날 때마다 몇 번째 곡, 어떤 소절에서 누구의 음이 어긋났는지 세세하게 적혀있다.
배우들은 놀란다. “어떻게 피아노 치고 지휘까지 하면서 배우들 노래까지 다 들으시는 거예요?” 노골적으로 당황하며 발뺌하는 배우도 있다. “제가 부른 노래를 제가 기억 못 할 리가요. 전 못 느꼈어요.” ‘오 형사’가 물러설 리가. “녹음해서 확인해 보세요.”
이 수고로움에 고마워하는 배우도 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배우도 많다. 괘념치 않는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피드백은 마지막 공연 직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관객은 ‘첫 공’인지 ‘막 공’인지 헤아려 무대를 평가하지 않으니까. “당장 내일 공연이 끝난다 해도 계속 피드백을 말해요. ‘이제 곧 끝인 거 아는데, 그래도 하나만 더 요구할게?’ 이러면서.(웃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연기는 자유로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음은 그럴 수 없어요. 수십 명의 배우, 수십 명의 연주자가 함께 만드는 소리니까. 한 명이 틀리면 모두가 알아요. 관객은 모를 수 있어도 저흰 알잖아요.”
모두가 자기 몫의 음에 묵직한 책임을 져야 하는 하모니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는 한 소절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베테랑의 시간 :
넘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24세에 리허설 반주자로 시작해 올해로 45세, 22년 차가 됐다. 21년이란 시간은 그를 ‘득도’의 범주에 올려놨다. ‘내려놓아야 할 때’를 깨닫게 만든 거다.
“한창 젊을 땐, 지적과 공격을 서슴지 않았어요. 적이 많을 수밖에요. 주변에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할 정도였어요. ‘너랑 작업한 애 중에 울면서 음악 관두겠다고 했던 애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실제로는 모두 업계에 남아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던 그 말들이 어느 순간, 쓰라리기 시작했다. ‘괴팍한 외골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막내 스태프던 시절에 스쳐 지나간 배우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감독의 날카로운 기세에 눌렸던 탓일까. 의견이 있어도 직접 전하질 못하고, 자신을 찾아와 넌지시 말했다. ‘네가 감독님께 대신 좀 전해줄래?’라면서. 어쩌면, 자신의 배우들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지 몰랐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저는 ‘내가 맞다’는 걸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 같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엔 정답이 없는데 왜 네 답이 맞다고 우기고 있는 거야?”
힘을 준다고 뭐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완성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며 시간을 쓰는 방법도 달라졌다. 그에게 시간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써야 하는 것’이다.
“1년에 작품을 3~4개씩 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음악감독은 프리랜서니까 일이 없으면 말 그대로 직업이 사라지는 거니까 불안했거든요. 한 작품이랑 제대로 헤어질 겨를도 없이 바로 겹치기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거죠.
지금은 1년에 딱 두 개만 해요. 지친 사람한테선 건강한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가 절대로 작품을 ‘겹치기’로 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연습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도 인정한다. ‘오민영 감독처럼 모든 연습에 다 나오는 감독은 없다’고.
시간을 빠듯하게 쪼개 쓰지 않으니,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쏟을 수 있는 에너지도 넉넉해졌다. 그와 함께 18년째 ‘시카고’에 참여하고 있는 21년 경력의 뮤지컬 배우 최성대씨는 ‘그는 내가 아는 감독 중 가장 배우를 잘 다룰 줄 아는 감독’이라고 말한다.
뮤지컬 배우 최성대 “같이 일하는 게 즐거운 감독이에요. 배우들에게 과하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해야 할 바를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게 도와주죠. 가끔 어떤 감독들을 보면, 예민한 걸 넘어서 날카로워요. 배우 한 명을 세워 놓고 10분 동안 무섭게 혼내서 연습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은 적도 많죠. 배우는 민망하고 무안해서 펑펑 울고. 그런 감독들은 음악적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다시 만나고 싶진 않거든요. 오 감독은 달라요. 연습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함께 일하는 상대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니까. 그렇다고 마냥 ‘물렁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일할 때는 한없이 정확하죠. ‘오 형사’라는 별명이 왜 붙었겠어요.”
한마디로 베테랑 배우들에게 그는 ‘또 만나고 싶은 감독’이다. 이제 막 무대 맛을 깨우친 주니어 배우들에겐 어떨까. ‘성장 치트키’같은 존재다. ‘탁아소 원장님’이라는 은밀한 별명이 붙기까지 했을 정도다.
뮤지컬 배우 김양희 “제 배우 경력이 6년 차인데, 이렇게 모든 연습 현장에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감독님은 오 감독님이 처음이에요. 심지어는 안무 연습할 때도 오세요. 음의 박자와 춤의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지까지 정확하게 체크해 주시죠. 저희끼리 하는 말인데요. 오 감독님이 이끄는 연습 시간에 갈 때마다 ‘탁아소에 맡겨진다’고 해요. 따뜻하고 섬세하게 케어받는다는 뜻이죠. 마음을 푹 놓고 나를 다 맡겨도 될 정도로. 쉬지 않고 뭔가를 끌어내 주시고 격려해 주세요. 그런 격려를 받다 보면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절로 샘솟죠.”
건강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낸 결과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시간을 배분하는 습관은 직업인으로서의 이상향을 지탱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누군가 ‘어떤 직업인이 되고자 하는가’ 물으면, 그는 늘 한결같이 대답한다. ‘유연하지만 굳건한 심지를 가진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된 셈이다.
“이 일을 하며 ‘1등이 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바라는 건 늘 하나예요. 제일 오래 하는 사람,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일류의 조건이라는 걸 그는 안다.
베테랑의 한 끗 :
나를 놓게 되는 몰입의 힘
당신을 베테랑으로 만든 ‘한 끗’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몰입하는 힘이요. 제가 가진 가장 강한 힘이에요. 연습이나 공연에 들어가면 나를 잃어버려요. 직업병으로 어깨에 오십견이 생겼는데, 공연할 땐 하나도 아프다는 것도 몰라요. 감각이 마비되는 거죠. 빠져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죠. 내 안에 뭐가 들어왔다가 나갔구나. 저를 불사른다고 해야 할까요.”
‘무아지경이 된다’는 뜻이군요.
“저랑 오래 작업해 온 스태프가 어느 날 저한테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감독님은 연습할 때만 천재고 연습이 끝나는 순간 바보가 된다’고.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평상시의 저는 좀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허술하거든요.”
그를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카페의 영업시간이 끝나 자리를 옮기려는데, 그는 이야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몸만 걸어 나왔다. 휴대폰, 가방, 텀블러를 자리에 모조리 다 남겨둔 채로. 뒤늦게 되돌아가 짐을 챙겨 나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봐! 기자님, 보셨죠? 저 바보 맞죠?”
궁극의 감각을 오직 일터에서만 몰아 쓰기 위해, 나머지의 시간은 무딘 상태로 보내는 걸까. 그는 연습실을 벗어나는 순간 어떤 음악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예민한 귀가 쉴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래야 다시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갈 준비가 되니까.
연습할 때 무아지경,
벗어나는 순간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아요
그런 무아지경도 늘 한결같을 수 있나요.
“사람들이 자주 물어봐요. 몇 년째 똑같은 연주, 똑같은 레퍼토리로 공연하면 지겹지 않냐고. 신기한 게 저는 이 일이 한 번도 지겨워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지겨워질 수 있지? 모든 공연이 다 다른데. 내 눈엔 하나도 안 똑같은데. (웃음) 이런 걸 보면 제가 참 이 일을 좋아하긴 하나 봐요. 그러니까 21년을 내리 했겠죠?”
무대 위에서의 모든 순간 앞에 자신을 온전히 불사르는 이 태도야말로, 베테랑 오민영의 숨겨진 한 끗이 아닐까.
Editor's Note
베테랑 뮤지컬 ‘시카고’의 음악 감독 오민영의 인터뷰, 재밌게 읽으셨나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요. 그와 녹음기 바깥에서 나눈 대화를 6월 6일 자 커리업 뉴스레터에서 독점으로 공개합니다.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놓치지 않으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지금 바로, 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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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Chapter1. 베테랑의 도구 : 메트로놈에 의존하지 않는다
- Chapter2. 베테랑의 루틴 : 무한 피드백
- Chapter3. 베테랑의 시간 : 넘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 Chapter4. 베테랑의 한 끗 : 나를 놓게 되는 몰입의 힘